"금융위기 막는 소방수되나"…진퇴양난에 빠진 ECB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유럽중앙은행(ECB)의 긴축 조기 중단으로 이어질까. SVB발(發) 금융시장 혼란에 시장의 관심이 '인플레이션'에서 '금융안정'으로 바뀌면서 ECB가 예고한대로 이번주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지에 관심이 쏠린다.


13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SVB 파산 사태 여파로 ECB가 오는 16일 열리는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거나 방향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SVB 파산 여진이 미국 은행들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지며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질 위험을 차단하는 것이 시급해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 정부의 개입으로 SVB사태가 2008년 금융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은 일단락됐지만, 추가 피해를 가늠하는 상황에서 긴축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중앙은행 분데스방크도 이날 SVB 파산이 은행권과 시장에 미칠 영향을 논의하기 위한 긴급회의를 진행하는 등 정책 당국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16일 회의를 포함해 향후 몇주간 통화정책 논의에 SVB 사태가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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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이번 사태가 과잉 긴축 부작용으로 인한 또 다른 위기의 시작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SVB 사태가 단발적으로 끝난다 해도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금융 취약성이 확인된 만큼 ECB가 금융안정과 인플레이션이라는 이중 난제를 극복해야 하는 시점에 봉착했다는 지적이다.

WSJ은 인플레이션에 맞서 고강도 긴축을 펼쳐온 ECB 등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융시장을 지키기 위한 '소방수(firefighting mode) 모드'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ECB가 고강도 긴축으로 인한 금융권 위험 확산 경로를 차단하기 위한 소방수로 역할을 바꾸면서 금리인상 기조가 뒤집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부 중앙은행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서는 SVB발 시장 패닉이 더 많은 은행과 금융사들을 위기에 빠뜨리고 경제 파멸의 고리가 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아일랜드 중앙은행 부총재를 지낸 스테판 걸렉은 "금리를 이정도까지 올리면 (경제의) 무언가가 무너질 수 있다는 명백한 위험이 드러났다"며 "금융안정을 위해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감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출처=UPI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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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SVB 파산 사태가 유럽 금융시장에 미칠 중대 위험이 현재로선 없다는 입장이지만 ECB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WSJ은 전했다. WSJ은 "ECB가 금리 인상 경로를 아예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번 회의에서 빅스텝에 대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 긴축 모드에 돌입한 ECB는 기준금리를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인 3.0%까지 높였으며,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0.5%포인트 추가 인상을 예고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달 회의에서 "인플레이션 싸움에서 승리를 선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빅스텝 단행을 예고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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