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조원 보조금 받자"…폭스바겐 유럽 대신 미국행

신규 배터리 생산 공장 부지로 북미 지역 검토

유럽 최대의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이 동유럽에 신규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려던 계획을 전면 보류했다. 대미 투자에 대해 각종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배터리 생산 기지를 유럽에서 북미 지역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8일(현지시간) 주요 외신들은 독일 폭스바겐이 당초 계획했던 유럽 내 신규 공장 건설 작업에 착수하기 전에 미 IRA 보조금에 대한 유럽연합(EU) 당국의 대응을 기다리고 있다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이 소식통은 폭스바겐이 유럽 배터리 공장 계획을 보류하고 북미에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사실상 북미에 더 가까워졌다"고 전했다.

폭스바겐이 북행으로 방향을 튼 것은 미 정부의 IRA 보조금 지원 때문이다. IRA는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대당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등의 차별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폭스바겐은 IRA에 따라 미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이 최대 100억유로(약 1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지난주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배터리 제조업체 회의에서 미 정부로부터 90억~100억유로의 보조금·대출 등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다만 북미 건설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이 내려진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폭스바겐은 "유럽에 더 많은 공장을 지으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이를 위해선 적절한 프레임워크 조건이 필요하다"며 "그런 점에서 'EU 그린딜'이 가져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EU 그린딜은 역내 기업에 보조금과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EU의 친환경 산업 정책으로 지난달 초 처음 발표됐다. 미 IRA에 대응해 '유럽판 IRA’로 불리는 이 계획에는 전기차 등 친환경 사업에 필수적인 주요 광물 원자재의 공급망 강화를 목적으로 한 핵심원자재법(CRMA)이 포함됐다. 오는 14일 CRMA 초안 공개를 앞두고 있지만 재원 마련 방안을 두고 EU 회원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업계 안팎에서는 "구체적인 대책이 없다"며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토마스 슈말 폭스바겐 부품 사업부 책임자는 브뤼셀 회의에 참석한 뒤 "북미 배터리 공장 계획이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며 "유럽이 향후 몇 달, 몇 년 안에 결정될 수십억달러의 투자 경쟁에서 IRA에 밀릴 위험에 있다"고 전했다.


[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앞서 폭스바겐은 동유럽에 신규 공장 6곳을 건설해 연 240기가와트시(GWh) 생산 능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폭스바겐 산하의 글로벌 배터리 사업체인 파워코는 독일 북부 니더작센주 잘츠기터 내 첫 배터리 공장 착공을 시작으로 오는 2030년까지 5개의 신규 공장을 유럽 지역에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허버트 디스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발표 당시 베터리 공장 부지로 스페인 발렌시아, 스웨덴 셸레프테오 등을 거론했다.


폭스바겐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기업 이탈이 가속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유럽 최대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스웨덴 노스볼트는 공장 설립을 독일이 아닌 미국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브뤼셀에 본부를 둔 유럽의 대표 환경로비그룹 T&E는 유럽 내 배터리 생산 기지 프로젝트의 3분의 2 이상이 취소 또는 지연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전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