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바꾸자]⑧'정치 선진국' 핀란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뽑는다

서현수 한국교원대학교 조교수 인터뷰
개방형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선출
연합 정부, 득표율 따라 장관직 배분

"핀란드 선거에서는 정당이 5% 득표율만 얻어도 국회의원 200석 중 10석 정도를 배분받고 정부 구성에도 관여할 수 있습니다."


서현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 조교수는 최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 단일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권력 배분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는데 북유럽 국가들은 그렇지 않다"면서 이처럼 말했다.

서 교수는 핀란드 고등교육기관을 졸업한 사회과학 분야 첫 한국인 박사다. 서울대 정치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핀란드 땀뻬레(Tampere)대학교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학술 논문으로 '핀란드 헌법개혁 모델의 특징과 함의; 의회-행정부 관계와 의회-시민 관계의 재구성(2018)'이 있으며 저서 '핀란드의 의회, 시민, 민주주의(2019)'를 펴냈다.


핀란드는 개방형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통해 국회의원을 선출한다. 유권자는 정당을 선택하거나 정당이 작성한 각 후보자 명부에서 후보를 선택할 수 있다. 자치구로 1석이 배정된 올란드(Aland) 지역만 소선구제이며 수도 헬싱키(Helsinki) 등 대부분 지역이 대선거구제(13곳·7~36명 선출)를 택하고 있다.


서현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 조교수. (본인 제공)

서현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 조교수. (본인 제공)


소선거구 1곳 제외하고 대선거구제…원내정당 8~9개

서 교수는 "원내정당은 8~9개 정도 되는데 당은 실제로 더 많다"면서 "비례대표제는 다양한 정당이 의회에 진입하는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는 득표율 5% 이상 넘어야 의석을 주는 문턱 조항을 도입하고 있지만, 핀란드는 1%만 얻어도 할당이 될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선거제도를 채택한 핀란드는 여러 지표에서 선진화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국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22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평가 대상국 180개 중 국가청렴도는 핀란드가 공동 2위(뉴질랜드)를 기록했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31위였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부설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지난달 발표한 세계 민주주의 지수 평가(2022)에서도 핀란드는 9.29점으로 1위 노르웨이(9.81점)와 근소한 차이를 보였다. 한국은 24위(8.03점)를 기록했다.


서 교수는 "우리나라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정부가 동거정부를 꾸린 드문 사례였다"면서 "이 외에는 정부 연합으로 나아가지 못해 정당 간 연합 정치 개념이 빈곤하고 드물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 역시 여러 세력이 모였지만 당을 통합한 것에 그쳤다고 부연했다.


핀란드의 경우 선거 결과 1석이라도 더 많은 정당이 제1당이 된다. 1당 정당 대표가 유력한 총리 후보가 되고 정부 구성을 주도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다. 1당은 다른 정당들과 정부 구성을 위해 공식, 비공식적 접촉을 시도한다. 서 교수는 "1당 대표는 각 정당에 차례차례 당의 공약 사항에 관해 설명하고 핵심 의제에 대해 의견을 물어 의견서 제출을 요구한다"면서 "공약이 이미 알려져 있지만 각 정당은 밤을 새워서 정부가 새로 만들어질 때 어디까지 요구할지, 예산의 증액과 삭감을 얼마나 동의할지 등 민감한 의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협상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1당은 정당을 바꿔가며 협상을 시도하는데, 득표율이 높은 순서대로 진행한다. 1당은 다음 의석수가 많은 2당과 연합해야 정부 운영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1당의 목표는 의회에서 법안과 예산을 쉽게 통과시키기 위해서 다수 정부를 구성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기간은 두어 달 정도로 우리나라 대통령 인수위원회 운영 시기와 비슷하다.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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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득표율에 따라 정당이 맡게 될 장관 자리도 정해진다. 서 교수는 "1당이 자의적으로 자리를 정하는 게 아니라 득표율에 비례해 이에 최대한 가깝게 장관 자리를 배정한다"면서 "유권자의 표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과정이 모두 끝나면 부처별로 진행하는 '정부 정책 프로그램'에 대한 합의를 매우 세밀하게 한다. 이 문서는 총리와 내각 장관들이 의회에서 선출될 때 승인을 받는다. 서 교수는 "동거 정당 간 갈등과 균열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일부 조정은 있을 수 있더라도 최초 합의된 정부의 정책 프로그램을 우선시한다"면서 "매주 수요일 저녁 장관들의 비공식 조정 회의, 야간 학교라고 불리는 회의록도 남지 않는 회의가 있는데 이때 또 일부 조정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조율 과정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정부 수립 기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을까? 서 교수는 "1당 대표에게 우선권을 주는데 만약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2당 대표에게 권한이 넘어간다"면서 "임시정부로 의회가 지속되면 다시 총선을 해서 권력 분포를 바꾸기도 한다"고 말했다. 핀란드의 경우 광장이나 마켓(market)에서 부스를 차려놓고 간소한 선거 운동을 하거나 당대표 연설, 토론 정도만 진행되기 때문에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다고 했다.


서 교수는 "한국의 경우 굉장히 극단적인 다수제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나라로 평가받는다"면서 "결선투표 없는 5년 단임 대통령제, 소선구제 편향 총선 제도가 결합하다 보니 대표성의 왜곡, 정치에 대한 불신이 굉장히 가중되는 나라가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개혁 시도가 위성정당 논란으로 번져서 오히려 문제가 악화되는 형상이 고착됐다"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세대조차도 권력 공유에 익숙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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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교수는 또 한국 정치가 "협상하고 타협하고, 합의된 만큼 진전한다는 민주주의 이해가 낮은 편에 속해서 정치영역에서 다양한 집단이 대표되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소선거구제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딱 1명을 뽑기 때문에 이미 경제·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엘리트 그룹에 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5060 중년 서울 명문대 출신 남성 법조인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핀란드는 지방의원을 겸직하며 국회의원도 할 수 있다. 34세 최연소 총리로 이름을 올렸던 산나 마린 총리는 땀뻬레 지방의원을 하면서 총리직을 수행 중이다. 마린 총리의 경우 청년 여성 정치인으로서 주목받았지만 20대 초반부터 지방의회 의원으로 오랜 기간 활동해 핀란드에서는 그를 정치 신예로 보는 시각은 전혀 없다고 한다. 서 교수는 "지방정부도 연합정부로 운영되고 전면적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운영하다 보니 다양한 정치사회 세력들이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더 많이 대표 될 수 있는 구조가 된다"면서 "언젠가는 선거제도를 개선해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천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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