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법원도 인정한 거대 노조의 '깜깜이 회계'

끊이지 않는 조합비 횡령 사건

회계 공개 거부는 깜깜이 자인

회계 투명성은 예외일 수 없어


"조합원 1만명 이상이 낸 조합비가 수십억원 이상이 되는 조합으로 성장했지만, 투명한 회계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조합비를 유용해 조합원들에게 좌절감과 분노를 초래했다."

지난해 12월21일 노동조합의 한 간부가 조합비 약 8억원을 횡령해 기소된 사건의 1심 재판에서 법원이 거대 노조의 '깜깜이 회계'를 지적한 내용이다. 한국노총 산하 건설노조위원장을 지낸 A씨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여간 조합비 통장에서 현금을 빼내 사적으로 사용하거나 노조 집행부에 상여금을 준 뒤 현금으로 돌려받는 등의 수법으로 조합비 7억5000만원과 복지기금 41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혐의가 대부분 인정된다며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노조 내 횡령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전직 지부장 B씨는 2011년부터 2020년까지 9년 동안 조합비 3억7000만원을 빼돌려 유흥비와 개인 생활비로 사용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그는 지부 업무비용인 것처럼 꾸며 노조 간부들의 해외여행 비용으로 유용하기도 했다. 또 다른 민주노총 간부 C씨는 조합비 7500만원을 도박비 등으로 썼다가 2021년에 징역 1년에 처해졌다.


노조의 조합비 횡령, 유흥비 탕진 등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재판부가 지적한대로 ‘투명한 회계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탓이 크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조합비 등 자체 예산이 어디에 쓰였는지를 공개하지 않는다. 이들 양대 노총은 정부와 자치단체로부터 해마다 300억원이 넘는 지원금을 받기도 한다. 세제 혜택 등 직·간접 지원까지 포함하면 연간 약 1000억원에 달한다. 모두가 국민 세금이다. 하지만 노조는 법률에 규정된 회계 공개 의무조차 지키지 않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양대 노총의 회계가 "동네 친목모임만도 못하다"고 말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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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노조에 회계장부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노조의 ‘깜깜이 회계’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양대 노총은 ‘노조 탄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조합원 1000명 이상 국내 노조와 노조연합단체 327곳에 회계자료를 제출하라고 공문을 발송했지만, 회신한 단체는 120곳(36.7%)에 그쳤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상급 단체의 ‘비협조 지침’이 조직적 불응으로 이어졌다. 한국노총은 지난 17일 산하 조직에 보낸 지침에서 ‘정부의 추가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고, 과태료도 자진 납부하지 말라’고 하달했다. 민주노총도 "고용부의 시정 지도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회계장부 제출을 거부하는 자체가 양대 노총 스스로 ‘깜깜이 회계’를 인정하는 꼴이다. 회계 관리의 투명성은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지켜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다. 국민 세금이 쓰이는 곳의 회계 투명성은 노조뿐 아니라 어느 기관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양대 노총은 본인들 장부 만큼은 ‘성역’인 양 꽁꽁 싸매고 있다. 외부 어느 곳의 감시를 받지 않으니 조합비를 수억원씩 빼돌려도 조합원들은 모른다. 겉으로는 노동자 이익을 대변한다고 외치면서 속으로는 회계 장부를 숨겨 사익을 챙기는 데 혈안인 양대 노총의 민낯이다. 이런 노조에 세금을 지원한다면 어느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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