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맞수]'에이스' 이과 형과 '시몬스' 문과동생의 침대 싸움

연초부터 '가격인상' 놓고 두 형제 대립
국내파 이과 형 '에이스' vs 해외파 문과 동생 '시몬스'
두 형제 모두 은둔경영 고집…최근 행보엔 온도차

[CEO 맞수]'에이스' 이과 형과 '시몬스' 문과동생의 침대 싸움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어쩌면 예고된 싸움인지 모른다. 형 안성호 에이스침대 대표(55)와 동생 안정호 시몬스 대표(52) 얘기다. 외부활동과 언론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이들이 연초부터 '가격인상'을 놓고 서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안유수 에이스침대 창업주(93)가 두 아들에게 국내 침대시장을 양분하는 회사를 물려줬을 땐 이런 모습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의의 경쟁과 화합으로 국민의 수면건강에 이바지하라는 그의 오래된 철학을 실현하길 원했을 게다. 하지만 가끔 돈은 피보다 진한 법. 가구업계의 짙은 불황은 두 형제의 관계를 경쟁과 화합이 아닌 대립과 반목으로 뒤바꿨다.

조용히 제 갈 길 가던 두 형제 왜 싸우나

먼저 칼을 빼든 자는 동생이다. 시몬스는 지난달 2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격 인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에이스는 지난해 최대 20% 가격을 올렸고 씰리침대와 템퍼도 두차례에 걸쳐 가격을 인상했다"고 경쟁사들을 언급했다.


형은 일주일 뒤 반격에 나섰다. 에이스는 "우리는 2017년 1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5년간 단 2차례 가격을 올렸다"면서 "최근 2년째 가격을 동결했다고 홍보하고 있는 시몬스가 2017년 말부터 6차례 가격을 올렸고 2021년에만 3차례 가격을 인상한 것과 대조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몬스의 매트리스 '윌리엄'과 '헨리' 가격은 2017년 12월 대비 65~87%가량 오른 반면 에이스의 베스트셀러인 '하이브리드테크' 레드와 블루는 약 30~33% 인상되는 데 그쳤다"고 부연했다.

두 형제의 대립은 업계 2위 시몬스가 수십년간 왕좌로 군림한 에이스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치고 올라오면서 촉발된 것으로 해석된다. 형 성호씨가 2002년 에이스를 물려받았을 당시 매출은 1003억원으로 2021년(3454억원) 기준 3.4배 성장했다. 동생 정호씨는 2001년 매출 228억원짜리 시몬스를 물려받아 2021년 3054억원으로 13.4배 성장시켰다.

국내파 이과 형 vs 해외파 문과 동생

황해도 사리원에서 16세때 단신으로 월남한 아버지가 1963년 설립한 에이스침대를 물려받은 장남 성호씨는 순수 국내파다. 1991년 고려대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곧장 에이스침대에 입사했다. 2년간 생산라인에서 현장 경험을 쌓은 성호씨는 1993년 기획이사에 오르며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았다. 2002년 에이스침대 대표로 취임한 이후 20년 넘게 회사를 이끌고 있다.


성호씨는 어릴때부터 아버지의 침대공장에서 혼자 노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방학땐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침대 제조 과정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오늘날로 치면 전형적인 '공대생'·'너드남' 이미지다.


그는 1990년대 초 히트한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광고에 담긴 아버지의 경영철학을 그대로 계승했다. 앞으로 첨단기술이 침대산업을 이끌 것이라 보고 무리한 신사업보다는 오로지 기술개발에만 매진했다. 그는 '하이브리드 파워스프링'과 16년간 100억을 투자한 '하이브리드 Z 스프링' 개발을 주도하며 글로벌 특허 수십건을 취득하기도 했다.

차남 정호씨는 1997년 미국 SIU(서던 일리노이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유학파다. 1998년 시몬스 기획실장으로 합류해 바로 경영 수업을 받았다. 형보다 1년 빠른 2001년에 대표 자리에 올랐다.


정호씨는 유년시절 비디오 가게를 자주 드나들었다. 그가 관심있는 건 영화나 만화가 아닌 TV광고였다. 비디오 테이프를 빌리면 앞뒤로 나오는 광고에 큰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국내와 해외 광고를 비교해보기도 했다. 만화를 볼때는 그림을 그냥 넘기지 않고 상상하는 버릇이 있을 정도로 공상하는 것도 좋아했다.


이런 영향인지 그는 시몬스가 광고·마케팅 사업을 전개할 때 유독 신경쓴다고 한다. 미국 유학시절엔 현지 침대 브랜드 광고를 녹화해 회사로 보낼 정도였다. 시몬스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선보여 인기를 끈 '침대없는 침대광고'와 '침대없는 팝업스토어' 등은 정호씨가 추진한 파격 마케팅 중 하나다.

여전히 두문불출하는 형, 슬슬 몸 푸는 동생

두 형제는 인터뷰 등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에이스와 시몬스가 형제기업이라는 사실도 쉬쉬하는 분위기다. 두 형제가 30대였을 땐 직원들과 일년에 한번씩 모여 축구시합을 하며 교류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하지 않고있다. 세간의 삐딱한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성호씨는 그야말로 '은둔 경영자'다. 아버지와 성격이 비슷해 보수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 성호씨는 2014년 에이스 설립 51년 만에 처음 열린 기자간담회와 2년 뒤 개최한 신제품 출시 기념 간담회를 끝으로 외부 행사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침대 외에 별다른 신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한우물 경영 방식을 고수하는 것만 봐도 그의 성격을 잘 알수있다.


반면 정호씨는 조금씩 스킨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10월 경기 이천에 있는 시몬스 팩토리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침대업계 1위가 목전에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자사 유튜브에도 종종 출연한다. 유튜브에서 주로 하는 대화 주제는 광고다. 정호씨는 "광고 콘티만 나왔을 때였는데 차를 타고 가는 도중 한 음악을 듣고 광고에 넣으면 좋겠다고 얘기해 선택되기도 했다"고 뿌듯해했다. 이 곡은 영국 일렉트로닉 듀오 혼네(Honne)의 'Warm on a cold night'로 2017년 시몬스 광고를 통해 유명세를 탔다. 시몬스 광고가 '배경음악(BGM) 맛집'으로 소문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곡이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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