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트]빈민 여성 발 묶은 거미줄이 성스럽다는 착각

알리 아바시 감독 영화 '성스러운 거미'
연쇄 살인마 종교적 신념 따랐다고 주장
정당하고 합리적인 행위로 받아들이는 여론

'아라비안나이트'는 샤흐르자드라는 여성이 샤흐라야르 왕에게 1001일 동안 들려준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샤흐라야르 왕은 왕비의 부정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매일 밤 처녀들과 잠자리하고 날이 밝으면 죽였다. 잔혹한 행위가 3년간 계속되자 샤흐르자드는 용기를 냈다. 매일 밤 찾아가 재미있고 진기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샤흐라야르 왕은 마저 들으려고 하루하루 처형을 미뤘다. 뒤늦게 샤흐르자드의 깊은 뜻을 깨닫고 잘못을 뉘우쳤다. 목숨을 담보로 한 필사적 투쟁이 여러 여성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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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중동 여성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적잖은 지역에서 몸을 재생산 도구로 치부한다. 농촌에서는 명예살인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아내나 누이가 성폭행당하거나 혼외 관계하면 아버지나 오빠, 남편이 처벌한다. 남성의 명예를 우선시하는 생각이 사회 곳곳에 뿌리박혀 있다. 국가권력마저 가족 내부 문제로 간주해 악습이 반복된다. 야샤르 케말이 쓴 소설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속 대사가 단번에 말해준다.

"여기 있으면 곧 죽게 될 거요. 내가 형수를 살려둔다고 이제 어머니는 나하고 말도 안 해요. 이브라힘 형도 형수를 벼르고 있지만 내 눈치만 보는 중이오. (…) 내가 형수를 그냥 놔둔다 해도, 아마 내 아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고 이브라힘 형이 죽일지도 모르지. 아니면 어머니의 친척들, 삼촌들, 사촌들이 당신을 가만히 놔두겠소? 언젠가 죽게 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오. 만약 아무도 처치 못 하면 형수 아들 하산에게 죽이도록 할 거요."


알리 아바시 감독의 영화 '성스러운 거미'는 비슷한 성격의 사회 고발극이다. 배경은 이란 최대 종교도시 마슈하드. 성매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거미'로 일컬어지는 살인마 아지미(메흐디 바제스타니)는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이나 안타까움이 없다. 범행과 시체 유기 장소를 언론에 제보할 만큼 극악무도하다. 체포된 뒤에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행동이었다고 주장한다.


"순교자들을 걸고 맹세합니다. 맞습니다. 전 미쳤습니다. 이맘 레자께요. 사명에 미쳤습니다. 제가 미친 것 같나요? 그래 보입니까? 의무를 다하는 게 미친 거라면 미친 게 맞습니다. 사회 정화 사명에 미쳤죠. 그게 뭐가 잘못됐습니까? 신께 미쳐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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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은 이슬람교 교단의 지도자다. 레자는 십이이맘파 8대 이맘. 817년 칼리프 계승자로 임명됐는데 이듬해 독살됐다고 전해진다. 마슈하드는 그의 묘지가 조성되고 이란 최대 종교도시로 발전했다. 1년 내내 순례자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지미의 종교적 신념도 못지않다. 전쟁에서 순교하지 못한 처지를 내심 비통해한다. 이웃들은 그런 자세를 높이 산다. 살인자로 밝혀져도 그의 가족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힘내야지. 엄마한테 안부 전해 드리고, 필요한 거 있으면 오시라고 해. 네 아버지는 우릴 대신해 훌륭한 일을 하셨어."


남성들만의 생각이 아니다. 적잖은 여성들도 한목소리를 낸다. 특히 아지미의 아내 파티마(포로잔 잠시드네자드)는 희생자들을 가리켜 "죽어 마땅하다"라고 말한다. 단순한 남편 옹호가 아니다. 아지미를 두둔하는 재향 군인회에 "왜 영웅이 되려고 한 걸까요?"라고 묻는다. 연쇄살인을 정당하고 합리적인 행위로 받아들인다. 이유는 중동 여성들이 베일을 쓰게 된 배경에서 유추할 수 있다.


베일은 남성 가부장 권력의 상징이다. 한 남성에게 속한 여성인지 아닌지를 표시하려는 목적으로 씌워졌다. 나치가 유대인에게 붉은 완장을 차게 해 폭력과 차별에 노출되도록 했던 방법과 유사하다. 신분 차이나 결혼 여부에 따라 베일을 쓰지 못한 여성이 남편의 성폭행·폭력이나 사회적 차별에 시달렸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여성들은 베일을 선망할 수밖에 없었다. '정숙한' 혹은 다른 남성의 눈길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여성이라는 표식에 자긍심을 느꼈다.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는 저서 '베일 속의 여성 그리고 이슬람'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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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요구하는 질서에서 벗어나지 않는 '착한' 몸을 가진 여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가부장 권력은 감시와 제재를 동원한다. 특히 '시선'의 권력은 탁월한 통제력을 발휘한다. 남성의 시선이 여성을 향할 때, 여성은 규율이 원하는 태도와 행동을 익혀가는 것이다. 베일을 써야 하는 여성이 베일을 쓰지 않거나 베일을 쓸 수 없는 여성이 베일을 썼을 때, 국가권력은 이를 형벌 제도로 벌함으로써 여성을 길들인다. 결국 여성은 베일을 써야만 하는 존재, 한 남성에게 예속되어야만 하는 존재, 그리고 자신이 속한 남성이 아닌 다른 남성에게 눈길을 받아서는 안 되는 '정숙한' 존재로 훈육되고, 여성의 몸과 성은 국가가 원하는 방식으로 통제된다."


이슬람에서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다. 그러나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사회·문화적으로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전자가 후자를 보살펴 돌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한 보호나 부양이 아니다. 여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성적 문란과 패륜으로부터 사회를 지키게 한다. '격리', '차단' 등의 뜻을 내포하는 히잡은 이 과정에서 나온 보호 수단이다. 근거는 코란 24장 31절이다.


"믿는 여인들에게 '눈을 아래로 뜨고, 정숙함을 지키며, 자연히 노출된 것 이외의 꾸밈새를 드러내지 말며, 얼굴 너울을 쓰고 가슴까지 내리며, 남편, 아버지, 시아버지, 아들, 남편의 아들, 형제, 자매의 아들, 여자 종, 노비, 성적 욕망이 없는 남자 종, 여인의 내정을 모르는 어린이 외의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꾸밈새를 드러내지 말라'고 이르라…."


골자는 여성의 정숙과 건전한 사회질서 확립. 밑바탕에는 여성이 남성에게 언제나 유혹자이며, 남성의 성적 타락을 조장하는 존재라는 시각이 깔려 있다. 오 교수는 "이슬람이 여성을 '알라의 형상인 남성을 파괴한 원죄'를 가진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기독교에서처럼 이브가 아담을 유혹해 신의를 저버리게 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여성의 몸을 '유혹자'로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해석했다. 이란 사회가 아지미의 연쇄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유다. 성매매 여성을 사회악으로 단정한다. 빗발치는 여론에 정부와 경찰은 수사를 차일피일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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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여성들을 성매매로 내몬 건 엄격한 규율과 통제다. 이란 여성들은 이슬람 혁명 뒤 베일과 집 안에 갇혀 지낸다. 공적 영역에서 활동을 보장받지 못해 대부분 직업을 잃었다. 집 밖 생활마저 자유롭지 못해 남편이나 아버지가 없는 여성은 생계를 이어갈 수단이 막막하다. 자신을 보호하고 생계를 책임져줄 남성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서 생긴 제도가 남성이 여성에게 지참금 조로 돈을 주고 일정 기간 부부가 되는 '시게'다. 기간이 1년, 6개월, 심지어 몇 시간인 경우도 있어 성매매에 유용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의를 위한다는 질서와 제도가 오히려 여성들을 옥죄는 사회. 아바시 감독은 끈끈하고 촘촘한 거미줄로 비유한다. 한쪽 끝에는 아지미 같은 거미들이 몸을 잔뜩 도사리고 있다. 순식간에 숨통을 막고는 차도르나 카펫을 거미줄 삼아 꽁꽁 싸맨다. 절실한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이제는 경찰마저 거미줄의 떨림을 감지하고 달려든다. 지난해 마흐사 아마니란 스물두 살 여성이 '히잡 착용 불량'이란 죄목으로 체포됐다가 사흘 만에 의문사했다. 여전히 견고하고 거대한 거미줄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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