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다이어리] 춘제 장식에 진심인 중국

[아시아경제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중국 쓰촨 충칭의 한 광장에 춘제(春節·중국의 설)를 앞두고 토끼해를 기념하는 초대형 '토끼 등'이 설치됐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이 등은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더니, 이내 갈가리 찢겨 철거됐다. 사랑스러워야 할 토끼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듯하고, 보기에 따라 매우 무섭고 사납게 생겼다며 여러 사람이 불평한 결과다.


광시 난닝의 번화가에서도 또 다른 '못생긴 토끼'가 화제가 됐다. "도대체 어딜 봐서 토끼란 말인가" "양의 얼굴을 한 토끼인가" "술에 취한 게 아니냐"며 설치물을 두고 혹평이 이어졌다. 이 역시 삽시간에 이모티콘으로 만들어지는 등 조롱거리가 됐다.

사진 출처= 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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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의 한 대형 쇼핑몰에서 역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춘제를 앞두고 건물과 건물을 잇는 복도에 흰색 등불이 줄줄이 걸렸다. 중국에서는 흰색이 상갓집을 연상시키는 탓에 불길하게 느끼는 방문객들이 많았고, 모양 자체에 왜색이 너무 짙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몇 시간 뒤 쇼핑몰 앞에서는 직원들이 모두 나와 이 등에 붉은 칠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춘제를 중국에서 보내면서, 장식에 대한 이들의 진정성에 놀라는 일이 많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은 인터넷상에서 크게 화제가 된 사건 몇 개만을 나열한 것인데, 실제 생활에서도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장식에 대해 이들은 '진심'이다. 대로변 가로등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인부들이 홍등을 걸거나, 강풍이 불면 인명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데도 고속도로 한쪽에 설치 전의 홍등·춘련(길한 문구를 써넣은 종이) 자재들을 잔뜩 쌓아놓기도 한다.


재미있는 점은 춘제 장식을 둘러싼 여론을 '장식'의 주최 측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제기된 문제에 명분과 근거가 있다면, 가차 없이 수정하고 고쳐서 불만을 해결한다. 사회문제에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터뜨리거나 시정을 요구하는 것에 소극적이라고 생각됐던 중국인들도 춘제 장식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듯하다. 장식에 진심이니, 대응도 진심일 수밖에.

올해 춘제는 중국인들에게 여느 해보다 더욱 특별한 모양새다. 이 큰 땅덩이에 흩어져 생업에 정신없었던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모여 새해를 맞이하는 풍습이, 3년 만의 '제로코로나 종식'으로 이들의 일상에 다시 돌아왔다. 이들이 춘제와 이를 기념하는 장식에 보여준 진정성과 몰입이 새해에는 또 다른 범위와 영역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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