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미분양 쇼핑에 180억 썼다..'정당성' 논란에 여론 싸늘

[아시아경제 차완용 기자] 명분을 세우기 위해선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한다. 그리고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정당성이라는 것은 규율적 범주를 넘어 사회적 인식까지 아울러야 하는 난제다.


특히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회적 쟁점에 있어서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 이 때문에 사회학(社會學)에서는 정당성을 ‘절차적 정당성’과 ‘실질적 정당성’ 영역으로 구분해 학술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절차적 정당성은 정해진 법과 규율 등을 준수하는 것이고, 실질적 정당성은 형평성과 공정성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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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실질적 정당성 논란에 휩싸였다. 고분양가 책정으로 미분양이 발생한 서울 강북구 ‘칸타빌 수유팰리스’ 아파트(전용면적 19~24㎡) 36가구와 서울 광진구 ‘안틸리아 자양’ 오피스텔 28실을 180억원 가량 들여 매입하면서다. 이들 아파트와 오피스텔은 주변 시세보다 30% 이상 비싸게 분양해 논란이 있던 곳들이어서 여론은 더욱 싸늘하다.

특정 시행사의 시장예측과 분양가 설정 실패를 정부가 세금으로 보전해 줬다는 불만마저 나온다. 시장에서는 2021년 분양했다면 시행사는 막대한 이익을 챙겼을 것이고, 집값 하락에 따른 손해는 수분양자들에게 전가됐을 것이란 불만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매입 가격에 대한 적합성 여부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LH는 칸타빌 수유팰리스의 경우 감정평가액에서 15% 할인된 금액인 2억1000만~2억6000만원대 가격으로 매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할인을 받은 만큼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구매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아파트는 지난해 8월 전용 20㎡(C타입)가 2억800만원에 매매된 이력이 있는 만큼 실거래가 보다 비싸게 매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안틸리아 자양의 경우는 모두 전용면적 25㎡로 한 채당 매입 가격은 최저 3억4200만원에서 최대 3억57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매매가 이뤄진 적이 없어 실거래가 비교도 어렵다.

이렇듯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LH가 대거 매입하면서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미분양 주택 매입을 통한 주택시장 연착륙 유도 방안’도 실질적 정당성 논란에 휘말리는 분위기다. 정부가 세금으로 건설사에 과도한 혜택을 준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온다.


이에 대해 LH는 정부가 발표한 정책과는 무관하게 이전부터 진행했던 정당한 계약이라고 선을 긋느라 여념이 없다. 정부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 그러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지켰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LH의 ‘2022년도 하반기 서울지역 기존주택 매입 공고’에 따른 매입대상주택, 매입대상지역, 매입가격 등에 있어 이번 미분양 주택 매입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것은 고분양가 책정으로 시장에서 외면 받는 아파트를 사라는 것이 아니다. 180억원을 들인 이 아파트와 오피스텔에서 해택 받을 국민은 당장 1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이들이 전세사기로 삶의 터전을 빼앗겨 눈물을 쏟고 있다.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좀 더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차완용 기자 yongch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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