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인구대책 날려먹은 정치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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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저희가 인구대책 논의를 어떻게 합니까?” 최근 만난 정부 관계자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한 말이다.


저출산과 인구급감을 대비하기 위한 논의가 정쟁에 파묻혔다. 발단은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 부위원장이 지난 5일 언급한 ‘헝가리 모델’이다. 헝가리 모델은 2019년 헝가리에서 시작한 대대적인 출산장려 프로젝트다. 출산 계획을 세우면 국가가 돈을 빌려주는데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원금과 이자를 탕감해준다.

대통령실은 하루 만에 "윤석열 정부의 관련 정책 기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반박했다. 안상훈 사회수석이 직접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본인의 개인 의견일 뿐 정부의 정책과 무관하다”는 말도 했다. 윤석열 정부의 기조에 맞지 않는 데다 정부 관료들이 난색을 보였음에도 나 전 부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말한 게 화근이었다.


정치권에서는 나 전 부위원장의 당대표 출마 가능성이 사태의 원인이라고 본다. 나 전 부위원장은 유력한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후보로 지지율 1위다.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는 후보와도 차이가 압도적이다. 대통령실이 이례적으로 비판을 쏟아낸 시점도 나 전 부위원장이 출마를 시사한 다음 날부터다.


문제는 정쟁 때문에 어려워진 인구대책 논의다. 일선 부서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감없이 듣고 필요한 대책을 수립해야 하지만 정치권 분위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실무자들은 대통령실 기조에 발맞춰야 하는데, 유력한 당대표 후보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곤란하다고 토로했다. 헝가리 모델은 좋든 싫든 검토조차 못하게 됐다. 현금지원 성격이 강한 다른 정책도 눈치를 보게 생겼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걱정한다고 했다. 고작 여당대표 자리 하나 때문에 다음 세대를 위해 시급한 인구대책을 망쳤다면 정치꾼으로 불러야 한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합계출산율이 1 미만일 정도로 인구급감 현상이 심각하다.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이 없다면 피해는 미래세대 몫이다. 정치꾼들이 저출산과 인구문제에서 손을 떼야 한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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