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열 번 넘게 고배, 과정의 설렘 즐기니 실패 피할 힘 생기더라"

김미희 빅크 대표

김미희 빅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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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페인포인트(pain point)’란 말이 있다.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약한 구석, 다시 말해 통점을 지칭한다. 이를테면 불안감을 자아내는 약점 같은 것. 하지만 그 존재가 마냥 무용(無用)하지만은 않다. 더 나아지고, 더 성장하는 자양분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김미희 대표도 그러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방황하던 청소년 시기의 인정 결핍이 낳은 분노가 공부해야 할 이유가 됐다. 이를 갈며 눈물로 1년 반을 보낸 끝에 전교 20등에 올라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시절에는 아르바이트와 과외로 학비를 벌면서 광고 공모전에 몰두했다. 시도하는 족족 낙방했지만, 그런 ‘페인포인트’가 오기를 불렀다. 결과보다 과정의 설렘을 즐기자는 마음으로 십수 차례 도전을 거듭한 끝에 제일기획 인터넷 광고 부문에서 은상을 받았다. 이를 기점으로 이후 공모전에서 백전백승을 기록했고, 이후 삼성에 입사했다.

삼성에서 갤럭시 모바일 서비스 기획자·디자이너로 일했다, 당시 지녔던 ‘페인포인트’는 부족한 영어 회화 실력이었다. 거의 모든 영어 공부법을 섭렵하다시피 했고, 그러던 중 개인과외 매칭 서비스의 사업성에 눈을 떴다. 하지만 사내 공모전에서 고배를 마시기 수 차례, 전문가들은 안 되는 아이템이라고 했다. 하지만 퇴사 후 2016년 모바일 회화 플랫폼 ‘튜터링’을 론칭해 3년 만에 100억대 매출을 기록했다. 현재는 크리에이터의 수익 불안정성의 ‘페인포인트’에 착안해 안정적인 수익 모델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빅크’ 창업에 도전하고 있다. 이런 도전 과정을 책 ‘내 인생, 압축 성장의 기술’(푸른숲)에 담아낸 김미희 대표를 4일 마주했다.


- 영어가 ‘페인포인트’라고 했다. 책 내용을 보면 단시간 내에 성적을 올린 것도 그렇고, 삼성 입사도 그렇고 학업 능력이 부족해 보이진 않는데. 상대적인 평가 아니었는지.

▲시험을 위한 영어에 집중하다 보니 회화가 약했다. 시험 영어는 잘하는 편이었지만, 원어민 앞에만 서면 벌벌 떨며 입을 떼지 못했다. 영어를 글로 배워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웃음)


- 영어 튜터링 서비스를 선보인 후에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는지.

▲확실히 늘긴 했다. 초보에서 중급 정도로 올랐달까. 테스터로 이틀에 한 번꼴로 ‘튜터링’을 꾸준히 하다 보니 효과를 본 것 같다. 다만 지금은 튜터링을 떠나 ‘빅크’를 창업하면서 거의 2년간 손을 놨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 많이 망설였겠지만 그래도 삼성을 뛰쳐나오는 결정적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80세 노인이 된 후 인생을 돌아봤을 때 도전하지 않아 후회할 것이 가장 두려웠다. 실패하더라도 도전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나. 그 시절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의 ‘후회 최소화 프레임’의 의사결정 방법이 가슴에 깊이 박혔다. 거의 6년을 고민하다 결정했고, 지금도 후회는 없다. 오히려 왜 그렇게 많이 고민했을까 싶다. 꼭 창업을 권하는 건 아니다. 도전 목표가 무엇이든 망설임이 크다면 후회 최소화 프레임에서 생각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후회 최소화 프레임=죽기 전 인생을 회고했을 때 후회할 일을 최소화하는 관점)


- 숱하게 거절됐던 아이템이었지만 결국 성공시켰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엄청난 성공이라고 말하긴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말씀드리자면 성공은 전문가들의 예측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누가, 언제, 어떤 이유와 의미를 갖고, 어떤 동력으로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수많은 시나리오와 결과가 만들어진다. 전문가들의 예측은 통상 범위에 머물 때가 많다. 통상 범위를 넘어선 노력과 방법을 적용하면 누구나 그런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 공모전에서 계속 낙방하다가 은상 수상을 기점으로 꾸준히 좋은 성과를 얻었다. 당시 무엇을 깨달았나.

▲성공하는 방법보다 실패하는 방법을 깨달은 듯하다. 어떤 한 방면에서 신나게 즐기면서 실패를 하다 보니 실패 전문가가 다 됐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제 마음이 실패에 포커스를 두지 않고 신나게 즐겼다는 데 있다. 당시에는 도전하는 과정 자체가 배움과 성장의 기회였다. 나를 아낌없이 내던졌던 시절이었다. 열 번 넘게 실패하니까 실패를 피할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


- 모든 조직이 그렇겠지만, 특히나 스타트업에서 인재는 최고 자산이다. 책에서 보면 좋은 인재들을 만났는데, 그런 매칭은 어떻게 이뤄냈나.

▲열망이 같은 곳을 향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사실 수많은 인연 속에 착각과 실패도 많았다. 그 와중에 비슷한 결핍과 열망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채용보다는 회사를 먼저 찾아오거나, 주변 추천을 통해 오신 분들의 적합도가 높았다. 특히 회사를 먼저 찾아주신 분들은 절박감과 결핍이 강한 분일 가능성이 높았다. 함께했을 때 큰 시너지 효과를 경험했다.


- 첫 번째 사업이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정상 궤도에 올랐다. 현재 두 번째 사업을 포함해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면. 또는 잠재적 위험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스타트업은 매 순간이 두렵고, 항상 위기 상황 같다. 애써 만든 제품이 고객에게 선택받지 못할까 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다. 고객에게 사랑받는 무언가가 탄생하기까지 전략을 세우고, 고치고, 도전과 실패의 반복이다. 이 반복 싸이클을 인내심을 갖고 버티는 게 관건인데, 가장 큰 위험 요소라면 그 과정에서 정신이 지쳐 버리는 것이다.


- 두 번째 사업으로 크리에이터들의 수익 안정화 기반을 제공하는 ‘빅크’를 설립했다.

▲‘빅크’를 시작하면서 창작자 생태계와 일의 미래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다. 10~20년 뒤 개인이 일하는 방식과 수익을 내는 방식은 어떻게 변화할까. 그 결과 미래에는 슈퍼 개인의 가치가 기업 가치를 뛰어넘고, 자신만의 콘텐츠와 IP(지적재산권)로 수익을 얻는 탈 직장 비중이 가속화할 것이라 생각했다. 슈퍼 개인을 위한 창작 도구를 제공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크리에이터의 수익화를 위한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 자신을 주인공으로 상상해보는 영화 시나리오가 성공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현재 어떤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나.

▲시간의 90%는 일과 사람에 치이는 치열함 연속이다. 다만 10%의 시간에 직원들과의 소소하고 행복한 추억, 뜻밖의 사람을 만나 좋은 파트너십을 만들어낸 일들, 그런 결과로 도래할 미래의 비주얼이 견딜 힘을 선사한다. 먼 미래에 ‘빅크’를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고 고백하는 상상 속 사람들과의 만남이 고된 현실을 견디게 한다.


- 스타트업 대표가 갖춰야 할 중요 역량을 하나만 꼽자면.

▲추진력과 실행력이다.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결과가 어찌 됐든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추진력의 핵심이다. 거기에 상상력과 순수한 열정이 더해져야 한다. 혁신에 기반한 스타트업은 상상의 가설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상상력과 순수함이 없다면 부정적 피드백에 믿음을 잃기 쉽다. 문제를 풀기 위한 순수한 열정이 매우 중요하다.


- 반대로 직원이 갖춰야 할 성장 요소는.

▲책에 언급한 갖추면 좋은 다섯 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꼽자면 ‘셀프 스터디(자기 주도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사람)'와 ‘전문 오지라퍼(다양한 협업이 가능한 유연한 전문성을 갖춘 사람)'다. 이건 구성원 모두가 갖춰야 할 필수 요소라고 생각한다.

[책담]"열 번 넘게 고배, 과정의 설렘 즐기니 실패 피할 힘 생기더라" 원본보기 아이콘

- ‘빅크’로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 현 상황이 궁금하다.

▲2021년 5월에 창업해 지난해 11월 크리에이터 플랫폼을 공식 런칭했다. 현재 KPOP뮤지션, 엔터테이너, 베스트셀러 작가 등이 참여해 ‘빅크’를 통해 라이브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짧은 기간 30만 이용자가 유입돼, 지난해 하반기 흑자전환을 달성했다. ‘팬 콘서트’ 이용자의 경우 61%가 해외 유저인 만큼 글로벌 시장 확장도 시작한 셈이다. 100억원 투자금(95억원 투자금과 5억원 R&D 팁스 사업)도 조달 완료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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