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모습. /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을 퇴근 지하철에 맡긴 당신. 몰려드는 피로감에 잠이 든 기억 뿐이다. 그런데 귀가 후 며칠이 지나 경찰로부터 공중밀집장소 추행 혐의로 고소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럴 일이 없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다"며 콧방귀 뀔 일이 아니다. 고소·고발이 됐다면 당신의 신분은 이미 '피의자'이니 말이다.
29일 경찰에 따르면 현행 경찰 형사시스템상 고소·고발을 당했다면 사건 접수와 동시에 피의자로 입건된다. 피의자로 입건이 됐다면 범죄 혐의에 대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경찰이 민원인(고소·고발인) 확인과 동의를 거쳐 사건을 반려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처럼 지하철 내 성추행 혐의로 고소가 됐다면 입건은 불가피하다. 피고소·고발인은 결국 억울함, 즉 혐의가 없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된다. 피고소·고발인 입장에서 억울한 일로 출석 기관에 출석을 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는 셈이다.
수사 기관도 이런 고소·고발이 마냥 반가운 일은 아니다. 경찰에 접수되는 고소·고발건은 연평균 40만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범죄 혐의가 없음에도 고소·고발만을 이유로 무고한 일반 시민을 피의자로 입건해 조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2016년부터 검경수사권 조정 이전인 2020년까지 5년간 경찰이 접수한 고소·고발 사건의 평균 기소송치율은 29%에 불과했다. 자연스레 수사력 분산 등 부작용이 대두됐다. 심지어 민사소송의 증거수집 목적으로 형사 고소를 이용하는 '민사의 형사화' 문제도 야기됐다고 한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이 같은 고소·고발 남용에 따른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방안 마련에 나섰다. 고소·고발을 당하면 거의 무조건 입건되는 현재 시스템이 불합리하다는 판단 아래 실제 혐의가 있는 사람만 입건하는 '선별 입건' 방안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올해는 고소·고발 선별 입건 등에 대한 근거 규정 마련과 형사조정제도 확대를 위한 입법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은 사실상 진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하고 검수완박법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검경협의체 실무회의에서도 이러한 현주소는 여실히 드러난다. 수사당국의 한 관계자는 "현재 민원인 동의를 받아 사건을 반려하는 것과 달리 고소·고발이 수리되더라도 수사기관이 범죄혐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입건하는 제도가 선별 입건"이라며 "검경협의체에선 오히려 반려 없이 '우선은 다 접수하자'란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고소·고발 선별 입건이 추진된다면 무분별한 피의자 입건 관행이 개선되는 등 국민 권익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향후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률 논의 시 국회나 법무부 등을 상대로 고소·고발 선별 입건 등에 대한 도입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어필한다는 방침이다. 또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만큼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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