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스케이프에서 트위터까지…투자자 행동주의 새 모델 제시한 괴짜 머스크

일론 머스크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1995년 어느 날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청년 일론 머스크는 최초의 웹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즈에 이력서를 냈다. 미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한 뒤 스탠퍼드대 석사 학위를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머무르던 중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취직을 결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넷스케이프로부터 연락 한 통 받지 못했고 본사 1층에서 서성거렸지만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떠났다.


테슬라, 스페이스X를 창업하며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머스크는 이때 사업을 결심하게 된다. 그는 이력서 사건을 계기로 창업과 투자를 이어나갔다. 핵심은 20대에 벌어들인 초기 자금을 새로운 미래 사업에 투자해 계속해서 자금을 불려나갔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N방송 등에 따르면 머스크는 창업을 통해 첫 자금을 마련했다. ‘닷컴 붐’이 한창이던 1996년 아버지에게 2만8000달러를 받아 자신의 남동생 킴벌 머스크와 미디어 회사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도록 도와주는 인터넷 아카이브 회사인 ‘집2(Zip2)’를 창업했다. 이 업체는 1999년 미 개인용 컴퓨터 업체인 콤바크컴퓨터에 매각됐고 머스크는 27세의 나이에 2200만달러를 갖게 됐다.


머스크는 이후 맥라렌 스포츠카 한 대를 사는 데 1000만달러를 사용한 뒤 나머지를 다음 스타트업인 온라인 뱅킹 서비스 업체 ‘엑스닷컴(X.com)’ 창업에 투자했다. 이 회사는 2000년 현 페이팔로 불리는 당시 칸피니티에 인수됐고 2002년 이베이가 페이팔을 인수하면서 페이팔의 최대 주주였던 머스크는 31세에 1억달러 이상의 자금을 확보했다.


이때부터 머스크의 괴짜 행보는 본격화됐다. 머스크의 다음 시선은 곧바로 우주로 향했다. 현 스페이스X로 불리는 스페이스탐사테크놀로지를 2002년 창업한 것이다. 머스크는 당시 스페이스X의 초기 발사 시도가 세 차례나 실패하면서 파산의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네 번째 발사에 극적으로 성공을 거두며 기술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스페이스X는 지난해 1000억달러에 달하는 기업가치를 기록했으며 미 항공우주국(NASA)과 사업을 함께 해나가고 있다.

2004년에는 직전해에 만들어진 테슬라의 초기 투자자로 합류, 2010년 테슬라가 상장하면서 머스크의 순자산은 3000억달러에 육박하게 됐다. 이후 뉴럴링크, 보링코퍼레이션 등을 설립하고 암호화폐에까지 관심을 넓히고 있다.


트위터를 인수한 머스크는 이제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도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패트릭 젠킨스 파이낸셜타임스(FT) 부편집장은 이번 인수에 대해 "일론 머스크가 투자자 행동주의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그는 이번 트위터 인수 과정 자체가 실적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이 이러한 행동주의 투자자의 압박에 취약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고 봤다. 인플레이션 상승과 금리 인상 등으로 증시가 어려운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간섭을 할 인센티브가 생겼다면서 향후 이러한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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