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국은행과 이창용 총재에 대한 기대

김태기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전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태기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전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물가 급등과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의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했다. 총재 공석이 길어지면 곤란하다는 공감대 때문인지 이례적으로 여야 합의 분위기 속에 후보로 지명됐고 인사청문회도 정책에 집중돼 모범적이었다. 이 총재는 취임사에서 세계화의 후퇴, 고령화와 저생산성, 양극화와 가계·정부 부채 등 한국 경제의 과제를 지적하고 경제정책의 프레임이 바뀌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가와 금융안정을 위한 한은의 역할은 통화정책의 테두리를 넘어야 하고, 이를 위해 해외와 외부 전문가와의 소통을 강화해 전문성을 키우겠다고 했다.


이 총재의 구상은 정부에서 민간 주도로 경제정책을 전환하겠다는 새 정부와 맥을 같이한다. 이 총재 취임으로 당면한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을 극복하는 국가적 역량이 올라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정부 주도 경제는 관행화돼 있는 반면, 한은은 금리를 결정하는 데 핵심 변수인 실물 경제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작다. 이러다보니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할 때 공급 규제와 대출 규제 중심의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고 금리인상에 나서야 했지만 시기를 놓쳤다. 실업률 등 정부의 고용통계가 노동시장의 현실과 괴리돼 있고 재정확장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은 경제성장의 잠재력은 떨어뜨리며 정부의 부채와 물가불안만 악화한다는 지적은 듣기 어려웠다.

한은법이 한은의 적극적 역할을 가로막는 측면이 있다. 한은법 1조1항은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하고 2016년에는 1조 2항이 추가돼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하는 데 금융안정에 유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고용 등 노동시장의 안정에 대한 언급은 없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가 금융안정을 위해 은행 등에 대해 규제와 감독을 하고 고용안정을 위해 금리 결정에 실업률의 변화 등을 주시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경제를 정부에서 민간 주도로 전환하려면 한은이 미국처럼 경제의 사령탑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한국의 금융시장과 노동시장의 제도가 미국과 달리 정부의 통제가 강하기 때문에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채우는 능력은 리더십이다. 한은이 경제 사령탑의 역할을 하려면 실물 경제의 현실부터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한국의 금융은 세계에서 가계부채가 가장 심각한 만큼 금리인상에 취약하다. 가계부채의 대부분이 부동산 대출에 기인하고 고령층이 부동산을 가지고 있지만 빈곤화되기 때문에 보유 부동산을 소득으로 유동화하는 금융기능이 필요하다. 한국의 노동은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고 생산인구 감소 폭이 빠르며 노조의 파업 성향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외부의 물가불안 충격은 임금인상으로 이어질 압력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의 장기화 가능성이 크다. 또 고용은 임금과 근로시간이 경직적이고 공공일자리와 재정지원에 의존도가 높아 경기침체의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한국은 경제정책의 질을 높이는 것이 시대적 과제다. 정책이 시장과 정책 소비자를 무시하고 정치에 예속됨으로써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혼란은 커져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은의 역할이 기대된다. 한은은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기구라는 장점을 살려 관련 부처와 협력에 적극 나서기 바란다. 이를 통해 현실에 맞는 통계와 지표의 개발 그리고 분석 역량을 키워 정책의 과학화에 기여하고 민간 주도 경제로의 전환은 물론,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을 해소하는 데 앞장서기 바란다. 한은과 이 총재의 리더십을 기대한다.

김태기(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 전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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