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영외, 근무시간 외 동성 군인 간 성관계 처벌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허경준 기자] 사적인 공간에서 동성 군인 사이의 성관계, 유사 성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남성군인 간 성행위가 그 자체만으로 ‘추행’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사적 공간에서 합의로 이뤄진 것인지 여부 등을 따지지 않고 군형법상 추행죄가 된다는 취지로 판단한 판례는 변경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1일 군형법상 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군 간부 A씨와 B씨의 상고심에서 유죄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남성군인 A씨와 B씨는 지난 2016년~2017년 근무시간 외에 영외에 있는 독신자 숙소에서 서로 합의 하에 성행위 등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군검사는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 군형법 제92조의 6조항을 적용했다.
재판에서는 근무시간 외에 영외에서 합의 하에 이뤄진 동성군인 간 성행위가 군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에 해당해 처벌 대상이 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4년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B씨에게는 징역 3개월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2심도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1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뤄지는 등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현행 군형법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전합은 "현행 규정의 대표적 구성요건인 ‘항문성교’는 성교행위의 한 형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문언만으로는 이성 간에도 가능한 행위"라며 "남성 간의 행위에 한정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므로, 현행 규정의 동성 군인 간의 성행위 그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이라는 해석이 당연히 도출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동성 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고 전제했다.
이어 "현행 규정의 보호법익에는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전통적인 보호법익과 함께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포함된다"며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두 가지 보호법익 중 어떤 것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는 해석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전합은 자발적 의사에 따른 동성 군인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서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조재연·이동원 대법관은 "현행 규정은 행위의 강제성이나 시간과 장소 등에 관한 제한 없이 남성군인들 사이의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처벌하는 규정이라고 보아야 하고, 구성요건을 제한해석할 수 없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라 이루어진 성행위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를 한 사람이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은 침해되는 것이므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에 관해 그 자체로 처벌 가치가 있는 행위라는 평가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선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다수의 대법관이 오늘날 국내외에서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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