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야(67) 광주 고려인마을 대표.
[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박진형 기자]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동포들의 SOS 요청이 빗발치고 있어요.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고 피난길에 오른 이들이 여권도, 돈도 챙기지 못해 국내에 못 들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1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에 있는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만난 신조야 광주 고려인마을 대표는 지난해 말 행사 현장에서 본 지 몇 개월만에 얼굴이 놀라보게 수척해져 있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고려인 피란민에게 항공권과 거주지 마련을 지원하면서 해야할 일이 산더미라고 한다.
지난 2001년 그리던 조상의 땅 대한민국을 찾아 2006년께부터 고려인마을 대표로 활동한 신 대표는 이같은 난리는 처음이라고 한다.
신 대표는 사실 오늘 인터뷰 약속도 깜빡했다고 미안해 했다. 전쟁의 화마를 피해 타국에 체류 중인 동포들과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를 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면서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지경이다.
실제로 인터뷰 중간중간에도 전화는 계속 울렸고 신 대표는 “미안하다”면서 전화를 10여 차례 받기도 했다.
내부 한편에 마련된 원탁 책상에서는 ‘긴급 구출 작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추가로 들어올 피란민의 명단을 확보하거나 비자 문제로 인접국에 발이 묶여 관련 대책을 마련하는 이른바 작전상황실이었다.
신 대표는 “앞으로 입국 예정자는 수백명이 될 수도, 수천명이 될 수도 있다. 현재로선 가늠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14일 최마르크(13)군과 22일 남아니따(10)양에 이어 30일 16명, 이달 1일 12명이 추가로 국내에 입국하는 등 규모는 점점 늘고 있다.
그는 해외 동포들이 해외 대표 메신저인 와츠앱(whatsapp)과 이모(imo), 카카오톡 등 앱으로 여권과 신분증, 비자 확인서를 받아 항공권을 구입한 후 전자항공권(이티켓)을 보내주는 방법으로 돕고 있다.
이러한 작전에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 여건이다. 이들 동포에게 항공편뿐만 아니라 원룸 보증금 200만원과 월세 2개월치까지 내주고 있어 현실적인 벽에 부딪힐 위기다. 게다가 항공료마저 몇 개월 사이에 50% 가까이 치솟았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지역 내 고려인만 도울 계획이었지만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동포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면서 “일면식도 없는 익명의 한국 사람들이 후원을 많이 보내주고 있어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현재 지역을 중심으로 약 25만 가구에 송출되는 지상파 방송 ‘GBS고려방송’을 통해 모금 활동을 진행 중이다. 후원 계좌로 십시일반 모인 액수는 4000만원 남짓.
전국에 우리처럼 고려인을 돌봐주는 단체가 없어서 루마니아, 폴란드 난민촌을 비롯해 안산, 천안, 청주 등 전국 고려인마을에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상황이라는 게 신 대표의 설명이다.
비자 발급에 필요한 여권과 신분증이 없어 깜깜한 난민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곳 센터에 도움을 요청한 이제니스(40)씨 가족이 한 사례다. 그의 어머니인 김류시야(70)씨는 러시아군 폭격에 집이 무너져 내려 인접국인 루마니아 난민촌에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신 대표는 “방법을 꼭 찾아볼게요”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대사관에서도 여권이 없어서 국내 입국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방면으로 방법을 찾고 있다.
그는 “평소에 해외에 갈 일이 없어서 여권을 발급받지 않거나 갑작스러운 전쟁통에 피란길에 올라 여권을 챙기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해도 여권을 소지하지 않고 있어서 인접국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서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며 “고려인 동포들이 다시 안정을 찾고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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