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박선미 기자, 이지은 기자] 우크라이나 사태가 원자재시장 전반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석유, 천연가스, 밀뿐 아니라 반도체의 주요 원료인 네온, 팔라듐의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 시 이들 주요 원료의 수입길이 끊길 가능성이 있다.
◆美 "반도체 기업 수입 다변화하라"= 13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백악관은 서방의 경제 제재 조치에 러시아가 반도체 생산의 핵심 원료 수출 중지로 맞대응할 수 있다고 보고 최근 반도체 업체들에 수입처 다변화를 주문했다.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 조치의 일환으로 반도체 수출 금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러시아는 네온, 팔라듐 등 원재료 수출 중단으로 맞대응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피터 하렐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 보좌관은 최근 반도체 업체들에 잇따라 연락을 취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 반도체 원료에 대한 의존도를 묻고 수입처를 다변화할 것을 촉구했다. 백악관의 한 관계자는 "러시아가 공급망에 혼란을 주는 조치를 취할 경우에 대비해 기업들과 마련하고 있는 대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백악관이 반도체 산업 긴급 점검에 나선 이유는 지난 1일 시장조사업체 테크세트가 공개한 보고서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테크세트는 미국 반도체 업체들이 네온의 90%를 우크라이나에서, 팔라듐의 35%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고 추산하며 러시아 제재 시 반도체 산업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따르면 2014년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침공했을 때 네온 가격은 600% 급등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의 조 파세티 부사장은 지난주 회원사들에 e메일을 보내 육불화부타디엔(C4F6), 팔라듐, 헬륨, 네온, 스칸듐 등 필수 원재료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의존 정도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韓, 네온 23% 우크라로부터 수입= 국내 업체들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될 경우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원료 생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가 수입한 네온 중 우크라이나 비중은 23%로 중국(66.6%)에 이어 2위였다. 2020년에는 우크라이나의 수입 비중이 66.6%로 1위에 달했다.
러시아는 반도체 생산 원료인 팔라듐 수출에서도 세계 1위를 차지한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면서 팔라듐 가격은 올해 들어 7.3% 올랐다. 국내 업체로 러시아로부터의 직접 수입은 3.4%에 불과하지만 가격 급등에 따른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반도체 수출 제한에 나설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러시아 현지 공장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첨단 반도체가 들어간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러시아 수출이 막힐 가능성도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이 반도체 제재 카드를 꺼내 미국 기술을 이용해 생산된 반도체가 러시아로 수출되는 것을 막을 경우 국내 반도체 업계도 타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 시장이 대부분으로 러시아 쪽으로 가는 물량은 미미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김꽃별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긴장이 계속될 경우 항공·해운, 석유화학, 시멘트 등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업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文,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주재=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오후 청와대에서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촉발된 공급망 대응 문제를 논의한다. 문 대통령의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주재는 지난해 10월 회의가 신설된 이후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경제안보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한편 우크라이나 사태 및 글로벌 공급망 대응책에 대한 지시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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