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공화국] 10년 후 50兆 시장 열리는데…인도 주행도 못하는 배달로봇

<1>기술 개발, 글로벌 경쟁 발목 잡는 정부
글로벌 배달로봇 시장, 연평균 35.1% 성장
선진국과 달리 국내 배달로봇은 '걸음마' 단계
도로교통법상 주행 가능 야외공간 사실상 없어
시장 선점 위해 해외 기업도 속속 韓 상륙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이 개발한 실외 배달로봇 '딜리드라이브.' 경기 수원 광교에 위치한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 '광교 앨리웨이'에서 실증을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 = 우아한형제들]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이 개발한 실외 배달로봇 '딜리드라이브.' 경기 수원 광교에 위치한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 '광교 앨리웨이'에서 실증을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 = 우아한형제들]



[아시아경제 이준형 기자] 배달로봇 산업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올라탔다. 비대면 주문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며 음식배달 시장이 급팽창한 영향이다. 국내 음식배달 시장은 2019년 약 9조원에서 지난해 20조원으로 1년만에 2배 이상 뛰었다. 업계는 지난해에도 음식배달 시장이 비슷한 규모로 성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스앤마켓스 등에 따르면 글로벌 배달로봇 시장은 지난해 약 2517억원에서 2026년 1조1360억원으로 연평균 35.1%씩 성장한다. 2030년에는 전체 배송물량의 20%를 처리하고 관련 시장은 50조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스타트업은 물론 대기업도 앞다퉈 배달로봇 시장 선점에 나섰다.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까지만 해도 국내 배달로봇 개발사는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과 뉴빌리티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2년새 만도, LG전자 등 중견기업과 대기업까지 배달로봇 개발에 뛰어들었다. 음식배달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물론 자율주행 빅데이터를 통한 인공지능(AI) 기술 고도화 등 매력적인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닌 까닭이다.

[규제공화국] 10년 후 50兆 시장 열리는데…인도 주행도 못하는 배달로봇


규제로 성장판 막혀

문제는 규제다. 2017년 우아한형제들이 국내 최초로 배달로봇 개발에 착수했지만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인 이유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운행 중인 배달로봇은 약 40대다. 국내 업체들은 기존 규제를 일정 기간 면제·유예시켜주는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일부 지역에서만 시범적으로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배달로봇 서비스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국내는 기술검증(PoC)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지역은 물론 범위와 시간도 제한적이다. 뉴빌리티가 세븐일레븐 서초아이파크점에서 운영 중인 배달로봇의 운행 가능 영역은 매장 반경 300m에 불과하다. 서비스 제공 시간도 오전 11시에서 오후 11시까지다. 배달로봇 외부 운행시 필수적으로 동행해야 하는 현장 인력을 무한정 투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배달로봇은 기본적으로 24시간 배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데다 인건비도 들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비스가 상당히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규제로 인해 뉴빌리티는 사업 확장에도 발목이 잡혔다. 회사는 올해 500대 이상의 배달로봇을 생산할 계획이었다. 인공지능(AI)이 핵심인 배달로봇 특성상 운행 데이터가 많을수록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에 유리하다. 하지만 현행법상 500대의 배달로봇을 현장에 투입하려면 최소 700~800명의 현장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현장 인력을 모두 아르바이트로 채용해도 직원수 40여명의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 배달로봇 운행 대수를 늘리려면 연구개발(R&D) 비용을 끌어와 인건비에 써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배달로봇 스타트업 뉴빌리티는 서울 서초구 세븐일레븐 서초아이파크점에서 배달로봇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규제에 따르면 외부 운행 중인 배달로봇에는 안전을 위해 사람이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사진은 뉴빌리티의 배달로봇 '뉴비'와 현장요원. [사진 = 이준형 기자]

배달로봇 스타트업 뉴빌리티는 서울 서초구 세븐일레븐 서초아이파크점에서 배달로봇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규제에 따르면 외부 운행 중인 배달로봇에는 안전을 위해 사람이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사진은 뉴빌리티의 배달로봇 '뉴비'와 현장요원. [사진 = 이준형 기자]



사업 기한도 사실상 시한부다. 규제샌드박스 승인시 규제를 면제·유예받을 수 있는 기간은 2년이다. 2년 후에도 현행 규제에 변화가 없으면 최대 2년까지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4년이 지나도 규제가 사라지지 않으면 결국 사업을 접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규제샌드박스 기간 4년 후에도 법이 정비돼 있지 않으면 임시허가를 내주고 법이 바뀔 때까지 기간을 무기한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배달로봇 업체가 승인을 받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규제샌드박스는 최대 기한이 4년이다. 규제샌드박스에 참여한 스타트업은 언제 해소될지 모를 규제에 전전긍긍하며 자금과 시간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법적 장애물도 산더미

상용화까지 넘어야 하는 허들도 적지 않다. 도로교통법상 배달로봇은 인도와 횡단보도는 물론 차도에서도 주행할 수 없다. 로봇이 등장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현행 도로교통법에는 사람도 자동차도 아닌 로봇에 대한 규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공원녹지법에 따르면 동력장치는 중량 30㎏, 최고속도 시속 25㎞ 미만일 경우에만 공원을 출입할 수 있다. 뉴비를 비롯해 우아한형제들의 ‘딜리드라이브’ 등 현재 개발된 배달로봇의 주행 속도는 시속 5㎞ 안팎이지만 무게는 대부분 30㎏을 웃돈다. 규제샌드박스를 거치지 않으면 사실상 배달로봇이 주행할 수 있는 야외 공간은 없는 셈이다. 이 밖에도 불특정 다수의 보행자에게 촬영을 위한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한 개인정보보호법, 물류를 운송할 수 있는 주체를 사람으로 한정한 생활물류법 등 배달로봇 운행을 가로막는 법적 장애물이 산더미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정부가 지난해 4월 발표한 ‘2021년 로봇산업 선제적 규제혁신 로드맵’에 따르면 경찰청과 산업부는 2025년까지 배달로봇의 보도 통행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해 9월 배달로봇 등 드론, 배달로봇 등의 영상 촬영 규제를 완화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연내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의 구글'로 불리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얀덱스의 배달로봇. 얀덱스는 배달로봇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한국 지사를 마련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러시아의 구글'로 불리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얀덱스의 배달로봇. 얀덱스는 배달로봇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한국 지사를 마련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다만 업계 반응은 회의적이다. 정부의 대응이 선진국에 비해 늦어진 데다 법률·규정에서 ‘허용된 것’만 할 수 있는 포지티브 규제 환경에서 근본적인 혁신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타다 사태’만 봐도 법은 전통적인 영역을 지키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미국 등 선진국처럼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 법은 영문법과 달라 네거티브 방식으로 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토교통부는 사회적 논란이 일었던 전동킥보드 여파로 인도 위에 사람이 아닌 존재가 등장하는 게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국민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배달로봇 규제 해소에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내 배달로봇 업체가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업체들이 규제와 씨름하는 사이 해외 기업들은 빠른 속도로 자율주행 노하우와 빅데이터를 쌓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실제 영국의 배달로봇 스타트업 스타쉽테크놀로지는 1000대 이상의 배달로봇을 운영하며 지난해 10월 배송 건수 200만회를 돌파했다. 미국 배달로봇 스타트업 코코는 배달로봇 1000대를 생산해 올 1분기 내 로스엔젤레스 등 3개 도시에 투입한다.


개화 단계인 국내 배달로봇 시장을 선점하려는 글로벌 기업도 있다. ‘러시아의 구글’로 불리는 글로벌 정보통신(IT) 기업 얀덱스는 배달로봇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한국 지사를 마련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배달로봇은 이미 글로벌 메가트렌드"라며 "우리나라가 경쟁에서 뒤쳐지면 해외 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지적했다.








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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