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이 격렬해지고 있다. 복잡한 전쟁이라서 국경도 없고 분야별 경계도 없다. '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대전환' '인공지능'…. 무슨 이름으로 부르든지 우리는 이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다. 먼저 움직이면 이기고, 한발짝 늦으면 진다. 다행히 한국은 아직 지는 편은 아닌 듯하다. 데이터를 기반한 K-방역에 놀란 세계가 G7 회의에 문재인 대통령을 초대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우리나라 데이터 정책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그 증거들이다.
데이터가 21세기의 원유로 떠오른 때는 2010년 전후다. 초기 정보화에 성공한 나라들이 그 성과로 축적된 데이터의 가치를 재발견한 시점이다. 문서 데이터를 디지털화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 단계를 넘어선 나라들은 200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디지털이 업무의 기본이 되었다. 매 순간 데이터가 축적돼 데이터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자 빅데이터 기술과 클라우드 컴퓨팅이 등장했고, 인공지능 로봇으로 진화했다.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데이터 플랫폼을 장악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과열 경쟁과 독점을 막아 보고자 유럽연합은 물론 미국에서도 규제 입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머지않아 데이터에 세금을 매기고, 이 기업들을 분할하거나 사업 분야를 한정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전선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어지는 중이다.
자동차 분야에선 신규로 진입한 전기차 플랫폼 기업과 기존의 전통 자동차 제조사가 자율주행시스템을 두고 전쟁을 치르고 있다. 금융분야에서는 이미 규제 자체를 샌드박스의 이름으로 걷어내는 중이다. 이 분야에서도 기존 금융회사와 신규 데이터혁신기업 간 갈등이 벌어졌지만 결국 소비자의 선택에 의하여 생존자가 결정될 것이다. 의료 데이터 분야에서는 원격의료 갈등, 개인 의료데이터 분석 서비스, 의료 데이터 수집 장치의 플랫폼 전쟁이 한창이다. 과거 일본 기업이 장악하고 있던 가전 분야는 스마트홈 전환에 속도를 내는 한국 기업이 전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모든 주체 즉 국가, 기업은 물론 개인도 이 전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는다. 어떻게 이길 것인가. 최근에는 사람에 주목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데이터 전쟁도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것을 깨달은 덕분이다. 어느 시점에, 무슨 데이터를, 어떤 방식으로 모아서 활용할지 결국 매 순간 사람의 계획이나 개입이 있어야 한다. 필요한 데이터를 발견하고, 그 데이터를 분석해 가치를 찾아내고, 데이터를 쓸 때 어려움을 제거해 주는 '데이터 지휘관'이 필요하다.
먼저 뛰어든 사람들을 보자. 신한은행은 통신회사에 근무하던 데이터 전문가인 김혜주 상무를 영입했다. 국민은행은 네이버클라우드에 있던 박기은 전무를 긴급 수혈했다. 뱅크샐러드의 김태훈 대표는 금융 혁신을 주도하는 데이터 실무가다. 금융기업들의 헤드헌팅 1순위는 디지털 혁신기업의 데이터 분석팀이다.
금융 분야는 과거 정보화를 가장 빨리 진행한 산업 분야다. 전통적인 경영학도보다 데이터 기술로 무장한 공학도를 우선 채용하게 된 건 이런 기술 혁신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데이터에 기반한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뱅크샐러드는 물론 카드회사의 데이터 기반상품 기획에서 더 나아가 데이터셋 자체를 판매해 수익을 내고 있다. 시작된 전쟁에서 질 수는 없다는 기업들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정부는 어떤가. 우리나라 정부가 구글보다 더 똑똑한가. 국민들을 위해 네이버, 카카오보다 나은 정책이나 서비스를 내놓았는가. 이런 질문에 답을 하려면 정부의 데이터 사령관이 누구인지 살펴보면 안다. 정부는 나를 둘러싼 소득·건강·가족·재산·학력 등 모든 데이터를 축적해 놓고 있다. 이 데이터들이 생명력을 얻으려면 이를 잘 엮여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만드는 데 쓰여야 한다. 그래야만 생명력 넘치는 데이터가 된다. 우리나라 공무원이 기업의 데이터 사령관 이상의 능력을 갖춰야 더 똑똑한 정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올 봄에 모든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에 '데이터기반 행정책임관'이 지정됐다. 새로 임명한 것이 아니라 기존 직원 중에서 선발해 일단 지정부터 한 것이다. 각 기관의 사령관으로써 데이터 전쟁을 지휘해야 할 임무를 맡았음에도 과장급 공무원에 그쳤다. 민간의 임원급 정도 되는 사령관을 두려면 국장급은 돼야 한다. 한 두 개 부처라도 국장급 사령관이 일을 맡아 세계적 기업과 비교했을 때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성과를 보여줘야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을까.
문 대통령은 혁신적 진보 정부를 표방하고 있다. 국가 전체의 데이터 사령관을 임명해 글로벌 데이터 전쟁의 지휘를 맡기는 것은 어떨까.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경제부총리가 데이터 사령관을 맡고, 데이터 수석비서관 자리를 만들어 대통령의 의사 결정을 데이터 기반으로 혁신하는 것도 우리나라 정부가 세계적인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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