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정윤 기자] 2살 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직장맘 김정인(32)씨는 친정과 시댁의 부모님에게 번갈아 아이를 맡기고 있다. 폐를 끼치는 게 죄송스러워 아이를 맡아줄 곳을 찾고 있지만 뉴스를 통해 어린이집 보육교사나 아이돌보미의 학대 소식을 접하면 불안한 마음부터 덜컥 앞선다. 김씨는 "남에게 아이를 맡기면 내 아이도 학대를 당할 수 있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진 친정·시부모님에게 맡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4살과 2살 된 두 아이의 아빠 박진규(31)씨도 "아동 학대 관련 소식이 나오면 육아 관련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이 시끌하다"며 "불편한 주제가 입에 오르내릴 때마다 아이 안전에 대한 걱정이 커진다"고 말했다.
아동 학대 소식들이 들려올 때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저출산의 현실을 이겨내고 낳은 아이.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며 키우지만 아동 학대의 피해자가 될까 두렵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2019 아동 학대 주요통계’를 보면 2019년 아동 학대 판단 건수는 3만45건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보다는 22%(2만4604건), 2015년 대비로는 156%(1만1715건) 증가한 수치다.
아동 학대가 발생하면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다. 아동 학대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아 경각심이 낮다는 것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9년 아동 학대처벌법 위반으로 전국 법원에 접수된 사건 267건 중 유기형이 선고된 사건은 33건으로 전체의 12%에 그쳤다. 집행유예는 96건으로 실형보다 3배가량 많았다. 실제 2019년 생후 14개월 아이가 밥을 먹지 않는다며 따귀를 때리는 등 15일간 총 34차례 학대한 서울 금천구 아이돌보미 김모(58)씨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아동 학대를 엄하게 다스린다. 스웨덴은 아동 학대 가해자에게 최대 징역 10년 등 무거운 처벌을 내린다. 프랑스에서는 아동 학대로 아이가 사망하면 징역 30년 이상, 장애가 생기면 징역 20년 이상의 중형을 내린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동은 피해를 받았을 때 분노감을 느끼기보다는 트라우마와 함께 체념과 좌절의 감정을 느끼는 성향이 있어 쉽게 학대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아동 학대를 엄벌에 처하는 사회 분위기가 마련돼야 이런 범죄를 근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대로 피해받는 아동을 구제하기 위해선 학대 사실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 표현이 서툰 아이의 경우 학대 사실을 외부에 알리기 어려워 의료인이나 보육 관련 종사자 등의 신고가 절실하다. 정부는 최근 아동 학대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아동 학대 신고 의무자 직군에 약사와 위탁가정 부모 등을 추가하는 대책을 내놨다. 아동 학대 가해자가 약국에서 아동을 치료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점이 고려됐다.
학대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선 영유아 건강검진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생후 14일부터 71개월까지 총 8차례 진행되는 영유아 건강검진을 통해 신고의무자인 의사가 학대 사실을 확인하자는 것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영유아 건강검진에는 아동 학대를 판단할 수 있는 항목이 없다"며 "관련 항목을 추가하고 교육이 이뤄진다면 아동 학대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영유아 건강검진은 의무가 아니라는 한계가 있어 아동 학대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선 개선도 필요한 상황이다. 아동 학대는 가해자가 부모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복지부에 따르면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가 2019년 전체 학대 중에서 75.6%를 차지했다. 부모가 학대 가해자로 돌변하는 이유는 사회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아이를 낳기 힘든 사회·경제적 환경이 육아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경제 상황이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동 학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모로부터의 학대가 빈번하자 정치권에서는 친권자 징계권을 삭제해 체벌을 금지하는 민법 개정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민법 제915조는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 때문에 훈육이라는 이름의 체벌이 이어지고 그 결과 학대가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정인이 사건’으로 학대 가해자와 아동 분리 의무화, 아동 학대 전담 공무원 추가 배치 등 각종 방지 대책들이 매일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불거진 문제만 해결하려는 산발적·땜질식이 아닌 종합적인 아동 학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은하 용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 학대 전담 공무원의 경우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야간에도 근무하는 경우가 많고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며 "학대피해아동쉼터도 그 수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학대 피해 아동이 가해자와 분리된 후 건강한 상황으로 회복하도록 돕는 장기적 관점에서 아동 학대를 방지하려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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