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질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낙태죄 문제에 대한 남성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20~30대 남성이 낙태죄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평가가 있나."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8일 진행한 낙태죄 관련 형법개정안 공청회에서 한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정의당은 "여성들의 삶을 짓밟은 어이없는 망언"이라며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김 의원은 "낙태죄에 대해 과거와는 달리 남성도 함께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문제라는 취지"라고 해명했으나, 일각에서는 낙태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2030대 남성 인식'을 묻는 것은 논점에서 벗어난 질문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는 낙태죄 문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충돌하는 문제를 논의해야 하며, 남녀의 대립 구도로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낙태죄 개정 공청회에서는 낙태죄 관련 개정안을 두고 여당 법사위 위원들과 전문가들이 의견을 교환했다. 정부가 입법 예고한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임신 24주까지는 유전적 질환, 성범죄, 사회·경제적 사유 등이 있을 경우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형법 개정안을 의논하는 자리였다.
논의 과정에서 김 의원은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에게 "낙태는 과거 우리 사회가 여성만의 문제로 생각해왔는데 사실 이 문제는 남성이 함께 결정하고, 심각한 책임 느껴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며 "20∼30대 남성이 낙태죄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평가가 있는지 궁금하다"라고 질문했다.
이에 김 연구위원은 "남성의 인식이요?"라고 당황한 듯 반문한 뒤 "저는 2030대 남성들도 낙태죄가 유지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데 동의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에 김 의원은 "그게 주류의 시각이나 평가일까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주최로 '여성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경찰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김 의원의 발언에 정의당은 즉각 반발했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낙태죄 폐지에 대한 여성의 반대 의견은 잘 알겠으나, 남성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등 어이없는 말들을 일삼았다"며 "여성들의 삶을 짓밟은 망언"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조 대변인은 이어 "낙태죄는 국가가 앞장서서 여성을 죄인 취급하고 있는 것"이라며 "(낙태죄 문제는) 여성의 권리이자 안전의 문제로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김 의원은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질문한 사람의 의도를 완전히 왜곡했다"며 "낙태는 남성도 같이 책임질 문제라는 것을 전제로 남성의 정부 법안에 대한 평가를 물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의원은 10일에도 재차 글을 올려 "설마 정의당은 여성만이 낙태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냐. 남성은 낙태죄에 대해서 질문이나 의견도 가질 수도 없다는 식의 정의당의 논평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남성 혐오'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 정의당이 말하는 '정의'인가"라고 반박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등 검은색 옷을 입은 여성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2017년 12월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에도 일각에서는 김 의원의 발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낙태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2030대 남성의 의견'을 묻는 것은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질문이라는 지적이다.
직장인 최 모(31) 씨는 "낙태를 하고 말고는 여성이 결정할 일인데, 이 문제에 대해 왜 남성의 인식을 묻나"라며 "낙태에 대해서 남성의 의견이나 책임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낙태를 결정하고 말고는 이것과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20대 직장인 이 모 씨는 "김남국 의원 말대로 낙태에 남성도 책임이 있다면, 왜 현행 낙태죄는 여성만을 처벌할까?"라며 "발언 자체가 법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 대변인도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의원을 향해 거듭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사과는 없이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양 코스프레 하는 것은 수 없는 여성들이 지금까지 맞닥뜨려야 했던, 폭력을 가했던 이들이 '내 탓 아니오', '나도 피해자'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문제의 핵심은 비껴간 채 반성이라고는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는 적반하장 태도"라고 일갈했다.
전문가는 낙태죄 관련 논란이 남녀 갈등으로 비화하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은의 변호사는 "낙태죄 문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충돌하는 문제를 다루는 이슈다"라며 "그렇기에 '2030대 남성 의견을 수렴했냐'는 질문은 낙태죄 논란의 본질에서 동떨어진 질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들이 결국 낙태를 하는 원인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어려움 때문이고, 이는 결국 태아에 대한 고민"이라며 "태아의 생명권은 태아에 대한 남녀의 고민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태아 자체의 의학적·권리적 측면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로, 젠더갈등으로 비화할 사안이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사안의 본질을 왜곡하고 공연한 남녀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며 "법률전문가로서 해당 논의에 대해 진지한 준비가 부족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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