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 타자기]세계 곳곳 '시체 문화유산' 답사기

[빵굽는 타자기]세계 곳곳 '시체 문화유산' 답사기

[아시아경제 이승진 기자] 한 남성이 분주히 움직인다. 이곳저곳 옮겨가며 어색한 미소와 함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는 검정 양복을 갖춰 입었다. 한 쪽 팔에는 두 줄의 띠를 둘렀다. 같은 시간 한 쪽 구석 방 안에서는 그곳의 주인공이 3일 동안 환한 미소로 오가는 이들을 말없이 지켜본다.


우리가 마주하는 장례식 모습이다. 종교가 있든 없든, 고인이 어떤 정치적 지향성을 가졌든 우리나라의 장례식은 하나같이 비슷한 모습이다. 그 규모와 오가는 이들의 면면만 다를 뿐 세계에 이름을 떨친 기업의 오너도 결국 마지막 모습은 이와 유사하다.

삶의 방식은 모두 다른데 죽음의 방식은 왜 같아야 할까. 죽음의 방식도 죽음을 마주하는 이가 선택할 순 없을까. 아니면 고인의 마지막을 지키는 가족들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떠나보낼 순 없는 걸까. 새로 나온 책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는 삶과 죽음이 지닌 '습관'을 돌아보고 이에 대해 문제도 제기한다.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가 던지는 화두는 올해 봄 한 장례식장에서 우연한 계기로 갖게 된 문제의식을 관통한다. 긴 시간 투병 생활을 이어온 고인은 생전 특별한 장례절차 없이 화장한 뒤 평소 좋아했던 장소에 뿌려달라고 가족에게 수차례 당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인의 생전 의지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고인은 작은 유골함에 갇힌 채 유리 칸막이 너머로 놓이고 말았다.


누구나 죽음을 상상한다. 하지만 그 상상은 결국 현재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으로 되돌아온다. 정작 죽음과 맞닥뜨릴 때 죽음을 둘러싼 관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다.

저자인 장의사 케이틀린 도티는 "우리가 옳고 '다른 사람들'이 불경하며 야만적이라는 잘못된 확신을 가진다면 개혁을 시작하기는커녕 기존 체계에 의문조차 제기할 수 없을 것"이라며 우리가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장례문화에 대해 따져 묻는다.


올해 봄 식어가는 육개장 앞에서 바삐 움직이는 상주의 모습을 보며 갖게 된 감정들이 저자의 질문 덕에 구체화한다. 상업화ㆍ기업화한 장례문화 속에서 '사랑하는 이를 후회 없이 떠나보낼 수 있을까', '내 마지막 모습은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등등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저자는 세계 곳곳에서 관찰한 장례문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더 나은 죽음에 대해 상상하고 선택할 권한을 부여한다.


인도네시아 토라자에서는 죽음과 장례 사이의 기간 중 시신을 집에 둔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 동안 유족들은 미라가 된 시신에게 말을 걸고 옷도 갈아입힌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컬로위에서는 '인간 재구성 프로젝트'로 이름 붙여진 '시신 퇴비화'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멕시코에서는 '망자의 날'에 산 자와 죽은 자가 나뉘는 경계를 허문다. 그러면 산 자의 마음에 닻을 내리고 있는 죽음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이다. 과거 인도 파르시 교도의 '천장(天葬)'에서는 독수리에게 시신을 맡겼다. 그러나 산업화로 독수리들이 사라져 장례문화의 산업화를 고민 중이다.


저자가 떠나는 '시체 문화유산 답사기'는 죽음, 더 나아가 시체를 다루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슬프거나 끔찍하진 않다. 그의 여행은 음지에 놓여 있던 상업화한 죽음을 양지로 끌고 나오려는 시도다.


많은 장례식장에서 의례적인 인사를 반복하며 마음 한 곳에 똬리 틀고 있던 물음에 햇빛이 드리운다. 저자가 말한다. "햇빛은 모든 것을 소독해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 대가가 무엇이든 간에, 죽음을 둘러싼 우리의 두려움, 수치심, 슬픔을 소독할 수 있도록 햇빛 속으로 끌고 나오는 어려운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라고.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케이틀린 도티 지음/임희근 옮김/반비/1만7500원)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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