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문혜원 기자] 남북 경제협력(경협)이 20년 전으로 회귀할 위기에 처했다.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데 이어 17일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지구에 군(軍) 전진배치를 예고하면서다. 남북관계가 이처럼 극단으로 치닫자 1998년 이후 대북사업을 주도한 현대그룹과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단 일대 66㎢(약 2000만평)에 대한 50년간의 독점사업권(토지사용권)을 보유한 현대그룹과 현대아산은 이날 오전회의를 열어 전날부터 현재까지 진행되는 긴급 상황을 공유하며 대책 수립에 나섰다.
현대그룹과 현대아산은 지난 20년간 개성ㆍ금강산 지구에 사업권과 유형자산 구축비용을 포함, 약 1조4000억원을 투자한 상태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사업은 지난 2008년 박왕자씨 피살사건으로, 개성공단은 지난 2016년 우리정부의 운영 중단조치로 근 5~10년째 공전 중이다. 해당 시기 현대아산이 겪은 매출 손실분만 1조6000억원에 달한다. 현대아산 한 관계자는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남관계를 대적(對敵) 관계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일정 정도는 예상됐던 부분"이라면서도 "북이 '경고한 대로 한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고는 있었으나 이렇게 전격적으로 빠르게 실제 조치에 나설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해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개성공단 재개를 바라던 입주 기업들도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120여곳에 달한다. 이들은 2016년 2월 북한의 핵실험을 이유로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의 전면 가동 중단을 결정함에 따라 기계설비와 제품 등을 남겨둔 채 남쪽으로 쫓기듯 넘어왔다. 협회에 따르면 이들이 철수 당시 남겨둔 자산은 정부에 신고한 규모만해도 9000억원 수준이다. 이는 기계설비를 비롯한 고정자산과 완제품 등 유동자산만 고려한 금액이고, 투자 손실까지 합하면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들은 정부를 상대로 투자 손실 보전을 위해 민사소송도 제기했지만 1심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부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정부가 개성공단 사업이 완전히 종료됐다고 선언하기 전까지는 폐업 절차도 밟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개성공단 재개는 이제 아주 어려워진 것 같다"며 "그동안 북한이 반대해서 공단 재개를 안 한 것이 아니니 미국과의 관계에서 해법을 찾았어야 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히 '경색' 국면으로 볼 수 없다고 진단한다. 북측이 330만㎡(약 100만평) 규모로 조성한 개성공단 시범지구의 시설철거까진 거론한 상태는 아니지만 사실상 재검토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측이 개성ㆍ금강산에 군부대를 전개하겠다는 것은 기존에 군이 관할하던 지역을 원상복귀하겠단 의미로, 시설 철거까진 거론하지 않았지만 남북 경협사업의 기존 틀을 부정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면서 "지금은 단순한 위기 상황이 아니라 남북관계 전반이 20여년 전 수준으로 퇴행하고 있는 국면"이라고 짚었다.
남북 경협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단 징후는 이전부터 지속 감지돼 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0월엔 금강산에 위치한 우리 측 유형자산을 "너절하다"고 평가절하 하며 전면 철거를 지시하기도 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금강산 경협과 관련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면서 선대 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간접적으로 부정하기도 했다. 독점사업권을 부여한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는 점에서 각 경협 주체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는 상태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