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가 진행 중이면 기소를 하지 말았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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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공범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에 사건기록 열람ㆍ등사가 어려운 사정에 있습니다. 수사가 종결되는대로 열람ㆍ등사를 허용하고자 하는데 공소제기까지는 대략 2~3개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1월29일 여당 인사 13명을 재판에 넘긴 이후 두 차례 열린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의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이 밝힌 입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수사가 덜 돼서 아직 재판에 임할 수 없으니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얘기다. 변호인은 이런 검찰 때문에 재판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이면 기소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기소해서 방어권 행사에 차질 생긴 상황입니다."

검찰이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반하는 기소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는 공소제기 이전까지 가능하고 기소가 이뤄진다면 검사와 피고인이 대등한 지위를 가진다는 당사자 대등주의를 위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이 같은 기소 관행은 지난해 표창장 위조 등 혐의로 기소된 정경심 동양대 교수 사건에서도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당시 검찰은 작년 9월 정 교수를 최초 기소한 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통해 얻은 표창장 위조 혐의 관련 증거를 법원에 제출했다.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법정에서는 "진행 중인 관련 수사에 중대한 장애가 초래될 수 있어 수사기록을 보여줄 수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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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서는 피고인의 방어권을 현격히 침해할 수 있는 기소 관행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등 수사기록만 3만쪽이 넘어가는 이른바 '트럭 기소'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검찰 등 수사기관은 개인이 만들 수 없는 기록을 단기간 내 만들지만 피고인 측은 정해진 기간 내 기록을 살피기도 어렵다"며 "검찰이 기소 이후 기록 복사를 제한하고 추가 수사를 통해 또다시 기록을 생산하면 방어권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원의 공판중심주의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공판중심주의는 공개된 법정에서 이뤄지는 진술을 근거로 재판을 해야 한다는 재판 원칙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과 정 교수 사건의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이 제한한 사건기록 열람ㆍ등사도 공판중심주의 강화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 중 하나다. '증거개시제도'라고도 한다. 또 다른 변호사는 "공소제기 이후에는 공판중심주의에 따라 모든 형사절차가 법정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검찰은 공범 수사란 변칙을 써서 이 절차를 뒤집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검찰 등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공소제기 이후라도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면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근 검찰이 텔레그램 '박사방' 사건의 주요 피의자 조주빈 등을 기소한 이후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위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일례로 꼽힌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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