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사적검열 없는 'n번방法'은 무용하다는 오해

'사적 검열'과 '무용론'의 흑백논리
생산적인 논의와 거리 멀어
국민적 공분 끝에 나온 'n번방 방지법'
각론·디테일에 대한 숙의, 토론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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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n번방 방지법'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카톡방 사찰' 같은 사생활 침해를 우려합니다. 성착취물 차단이라는 미명 하에 사업자들이 무작위로 개인의 메신저나 비공개 블로그, 메일을 훔쳐 볼수 있다는 '빅브라더' 논란이지요.


다른 한 편에선 무용론(無用論)을 제기합니다. 네이버, 다음, 카카오 등 애꿎은 국내 기업들만 규제 유탄을 맞을 것이란 우려입니다. 문제의 온상인 텔레그램은 서버 위치도 몰라 집행력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 자체가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입니다.

이 때문에 n번방을 둘러싼 보도는 둘 중 하나를 겨냥합니다. '사적검열' 혹은 '무용론'입니다. 두 가지가 마치 제로섬 관계라거나 흑백논리, 상충되는 가치라는 프레임을 잡기도 합니다. 텔레그램이나 카톡방, 비밀블로그나 개인 메일을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해명하니, 제도가 쓸모없다고 합니다.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한다고 하니 개인사찰이라고 합니다. "그럼 아무것도 하지말라는 것이냐"는 방통위의 토로가 나올만도 합니다.


이 쯤에서 짚어볼 지점이 있습니다. "사적 검열을 하지 않고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할 방안이 없느냐"는 것이지요. '사생활 침해도 하지 않으면서, 성착취물에 대한 규제도 할 수 있는' 중간지대 말입니다. 방통위는 여러차례 언론브리핑에서 'n번방 방지법'의 운용의 묘를 살려 이 중간지대에서 규제와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공개된 온라인 게시물'에서 유통되는 성착취물만을 대상으로 사업자에게 감독 책임을 지우되, 비밀 공간에서 주고받는 성착취물은 신고포상제도를 활용하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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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방지 논의'의 골자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①국내사업자의 성착취물 유통방지 의무를 강화한다(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제22조의 5). ②정부나 사업자가 영장 없이 볼 수 없는 비밀대화방, '제 2의 n번방'에 대한 단속은 신고포상제도를 통해 단속한다. ③텔레그램 등 소재 파악이 어려운 해외사업자 플랫폼의 성착취물은 등 역외규정과 대리인제도(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제22조의 8)로 대비하고, 국제공조를 통해 규제한다.

세가지 대책 모두 다 정책의 영향을 받는 주체도 다르고, 규제 수단도 다릅니다. 핵심은 이 세가지 대책이 맞물려 '제 2의 n번방'을 막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엄연히 통신비밀보호법으로 막혀있는 '영장 없는 통신 사찰'을 우려하거나 '텔레그램은 적용 안받는 n번방법'이라는 프레임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텔레그램이 해킹이나 테러 등 범죄에 악용돼 골치를 앓고 있지만 소재가 불분명해 집행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은 전세계 정부가 고민하는 이슈고 풀어야 할 과제이지, 그 자체로 'n번방 방지법'의 반대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이제는 방통위가 마련할 시행령의 각론이 '성착취물을 단속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도록 토론과 숙의, 감시가 필요한 때 입니다. 이분법적으로 볼 사안이 아닌 것을 흑백논리로 말하거나, 상충되는 사안이 아닌 것을 제로섬 관계로 몰아세우는 것은 생산적인 논의와 거리가 멉니다. 사적검열, 무용론에 빠져 제도가 폐기되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말자"로 결론이 나게 되면 결국 누가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일까요. "n번방 방지법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가 커지고 있다"는 방통위 관계자의 말을, 지금 시점에서 곱씹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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