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대응 경영, 변수 아닌 상수로…'HIP 경영' 자리잡다

위기대응 경영, 변수 아닌 상수로…'HIP 경영' 자리잡다


[아시아경제 황윤주 기자, 이동우 기자, 유제훈 기자] 'H(healer)·I(intuition)·P(planned planless)'.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국내 환자 첫 발생 후 지난 4개월간 국내 기업들이 '힐러·직관·계획된 무계획'을 중심으로 비상 경영의 고삐를 죈 것으로 파악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른바 '힙(HIP) 경영'이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들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임직원의 건강 및 보건을 관리하는 조직 규모와 역량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재난이나 돌발 위기 상황으로부터 조직원을 최대한 방어하고 정상으로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힐러' 역할이다. 그동안 기업에서는 안전이나 환경 관리 비중이 절대적이었으나 코로나19를 계기로 보건 관리가 조직의 핵심으로 부상한 셈이다.


대표적인 곳이 SK그룹이다. 2014년부터 전 계열사에 안전·보건·환경(SHE) 경영 관리 체계를 도입했는데 올해 초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의 SHE 조직을 임원급으로 격상하고 의장 직속으로 편입했다. 덕분에 코로나19 초기 대기업 중 최초로 재택근무를 전격 실시하면서 새로운 근무 형태의 변화를 이끌었다. 삼성전자는 국내에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난 1월 중순께 즉시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각 기업들 스스로가 하나의 면역 체계로서의 기능을 성실하게 수행한 덕분에 코로나19 위협으로부터 조직을 지켜왔다는 평가다. 포스코 역시 장인하 사장 산하에 꾸려진 안전혁신 비상대책 TF를 중심으로 비상 방역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현장 중심의 직관 경영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일례로 완성차 회사는 월간 단위로 짰던 생산 계획을 하루 단위로 쪼개 현장에서 판단하고 실시간 의사결정 체계로 전환했다. 한 제조 업체의 해외 법인장은 "위급 상황을 감안해 판매 물량에 따라 단기 생산량을 현장에서 조정하도록 했는데 우려했던 것보다 의사결정이 유연하고 실행력의 질도 높아졌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회사는 PC와 서버 기업을 비롯해 소재·장비 등 글로벌 공급사의 수급 동향을 하루 단위로 점검하고 리스크를 실시간으로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경영 체제를 가동 중이다. LG그룹이 1년에 두 차례 개최하던 사업 보고회를 하반기 1회로 줄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LG그룹 관계자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 수시로 계열사 주요 전략 방향을 논의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면서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빠른 실행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럭비공처럼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면서 기업들은 '계획된 무계획' 상태에 빠졌다. 상시적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비상대응계획)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나리오별 계획 수립이 무의미한 만큼 임기응변식(式) 대응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연간 실적 전망치도 제시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서병훈 삼성전자 부사장은 지난달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코로나19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렵다"면서 "연간 가이던스 제공도 어렵다"고 했다.


당장 존폐기로에 선 항공 업계의 고민은 더 크다. 물류ㆍ운송산업 특성상 각 국의 입국 통제 강화로 끊긴 노선망이 회복되지 않으면 영업 자체가 불가한데, 코로나19의 확산세와 더불어 전 세계가 경기 침체 국면에 들면서 시계제로 상황이 된 까닭이다. 당초 항공 업계는 항공 수요가 U자형으로 회복되면서 올해 4분기께 정상 궤도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을 내놓은 바 있으나 최근 들어선 올해 이후(항공 컨설팅 그룹 CAPA), 18개월 이상(에미레이트항공 CEO), 2~3년 후(보잉 CEO) 등 비관적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사실상 사업 계획을 수립하기 난망하다.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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