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받고나서 현금 쌓아놓는 기업들

3월 기업 현금성 자산(M2) 820조
2001년 통계편제 후 역대 최대
한 달 만에 30조 넘게 늘어나

3월 은행 기업대출 18.7조, 4월엔 27.9조 ↑
대출금 대부분 안 쓰고 쌓아놔

경기부진에 투자하기 어려운 환경
"회사채 차환 등에 사용할 듯"

대출 받고나서 현금 쌓아놓는 기업들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기업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대출을 받아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감안해 정부가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는데, 낮은 이자로 대출이 가능한 만큼 '일단 받자'는 분위기가 생긴 것이다. 경제 위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도 기업들이 현금 확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14일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중 기업의 현금성자산(M2ㆍ평잔, 계절조정계열) 보유량은 819조9724억원으로 전월(789조5350억원) 대비 약 30조4300억원 늘었다. 2001년 12월 통계편제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기업들이 한 달 만에 현금성 자산을 30조원이나 늘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2월 기업 M2 증가액(17조600억원)보다도 1.78배 많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이상 M1) 외에 머니마켓펀드(MMF), 2년 미만 정기 예ㆍ적금 등과 같은 단기 금융상품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통화지표다. 비교적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상품들을 포함한 수치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자만 포기하면 언제든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범위까지의 상품인 셈이다. 2년 이상의 장기상품은 유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제외한다. 결국 기업들이 '언제든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돈'이 한 달 만에 30조원이나 늘어났다는 얘기가 된다. 방중권 한은 금융통계팀 차장은 "코로나19에 따른 기업들의 유동성 확보 노력, 정부의 정책금융 지원 등으로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등에 자금이 크게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현금을 확보한 수단은 대출이었다. 한은이 지난달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3월 중 기업대출(원화 기준)은 한 달 만에 18조7000억원 늘었다. 기업대출 증가 규모는 2009년 6월 이후 최대 규모였다. 대기업 대출이 10조7000억원 늘었고, 중소기업 대출은 8조원, 개인사업자 대출은 3조8000억원 늘어났다. 결국 코로나19 피해기업이 늘었다는 판단 때문에 지원했던 대출금이 현금성 자산으로 대기 상태라는 얘기가 된다. 지난달 기업대출 잔액은 929조2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27조9000억원 증가했다. 증가액은 3월에 이어 통계 편제 이후 최대 규모를 경신했다.


다만 3월 한 달만을 보고 기업들이 전혀 투자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긴 어렵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은 비상 시기인 만큼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뒀다가 회사채 차환 등에 쓸 것으로 보인다"며 "3월 회사채시장 위축을 경험했기 때문에 기업들이 계좌에 꽂힌 대출금을 그대로 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부분은 금융시장이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신용경색이 오는 것이다. 한은과 정부, 산업은행 등이 특수목적법인(SPV)을 만들고 유사시 낮은 등급의 회사채를 매입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업의 투자심리가 되살아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집계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지난달 전 산업 업황실적 BSI는 51로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제조업 설비투자실행 BSI는 80으로 떨어졌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기업투자가 많이 줄어서 상대적으로 늘 수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증가하는 추세가 아니다"라며 "대기업들은 대출을 받지 않으면서도 현금성 자산이 쌓이고, 하위 기업은 추가로 대출을 받는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리쇼어링(reshoringㆍ제조업의 본국 회귀)을 비롯해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려면 정책적 제도개혁이 필요할 것"이라며 "기업들이 해외로 나간 이유는 인건비 문제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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