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춘희 기자] 정부가 주변 시세에 비해 턱없이 낮은 분양가를 강제하면서 주요 재개발ㆍ재건축 조합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업성 확보에 골몰하고 있다. 최근 건설사들이 '꼼수' 비난을 무릅쓰고 수주 과정에서 정비 사업 조합 측에 제시하는 통매각ㆍ임대리츠 등의 분양 대안도 결국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 때문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우건설은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재건축 수주전 과정에서 '재건축 리츠(REITsㆍ부동산투자신탁)'라는 새로운 일반분양분 처리 방식을 조합에 제안했다. 조합원분양분을 제외한 물량을 일반분양하는 대신 조합이 출자한 리츠에 현물출자, 일정 기간 이를 운용한 뒤 처분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대우건설이 이같은 방식을 제안한 것은 주택공급규칙에 따른 일반분양을 할 경우 제값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조합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일반분양을 위해 입주자모집공고를 하려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이 반드시 필요한데 분양가 협상 과정에서 시세에 턱없이 못 미치는 분양가 책정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은 기존 일반분양 회피 사례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고 즉시 제동을 걸었다. 서울시는 지난 17일 이 같은 방식이 "청약제도를 통해 공정하게 무주택 시민에게 주택을 공급하는 현행 주택 공급 질서를 무너뜨리는 불공정행위"라며 리츠 도입을 위한 선결 조건인 "정비계획 변경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관계자 역시 "래미안 원베일리 등 기존 사례와 크게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다"며부정적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대우건설 측은 "이미 법무법인을 통해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검토를 받은 상황"이라며 "시공사 선정 후 조합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기존 선분양ㆍ후분양 외에 다양하게 늘리는 차원일 뿐"이라고 강행 의지를 밝혔다.
앞서 신반포3차ㆍ경남아파트 재건축(래미안 원베일리) 조합은 일반분양분을 임대사업자에게 통매각해 수익성을 확보하겠다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이때도 관련 법령에 위반되는 만큼 정비계획 변경을 허용키 어렵다며 강경 대응에 나서 결국 통매각을 무력화했다. 결국 조합은 '1+1' 조합원 분양분과 보류지를 최대한 늘려 일반분양분을 줄인 상태로 분양에 나서기로 했다.
정비사업 수주전이 검찰 수사로 번지기도 했다. 지난해 한남3구역 수주전 과정에서는 국토부와 서울시가 분양가 보장, 사업비와 무이자 지원, 임대주택 '제로' 등 법령상 금지된 조건들이 다수 포함됐다며 일부 혐의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다만 사건을 맡은 검찰은 입찰 참여 건설사들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업계는 심지어 21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서울 7개 재개발ㆍ재건축 조합 합동점검 결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가 밝힌 위반사례 162건 중 상당수는 과도한 법 해석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점검 발표에서 18건에 대해서는 수사를 의뢰하고 56건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내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지적한 '과도한 특화설계 제안' 등은 너무 주관적인 평가기준"이라고 주장했다.
업계는 정비 사업을 둘러싼 이 같은 마찰과 잡음은 정부의 지나친 분양가 통제 등 가격 억제 정책이 가져온 나비효과라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일반분양가가 조합원분양가보다도 더 싼 기현상이 빚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재개발 임대주택 비율 상향에까지 나서며 정비사업 수익성에는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그러자 먹거리가 줄어든 건설사들이 입찰 과정에서 분양가 보장이나 임대주택 제로, 일반분양 제로 등 기상천외한 수익성 확보 방안을 핵심 조건으로 제시하며 조합원의 표심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래미안 원베일리의 경우 현재 조합원 분양가가 3.3㎡당 5560만원 수준이다. 분양가상한제 확대 이전에 입주자모집공고를 내더라도 현재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 분양가가 강남권의 경우 3.3㎡당 5000만원을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일반분양가가 더 낮을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정부가 인허가권을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분양을 회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 수익성 확보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조합의 고민은 더 깊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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