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늘] 아폴로 13호

[에세이 오늘] 아폴로 13호

1961년 5월 25일,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의회에 '국가의 급무(急務)와 현상에 관한 특별 교서'를 제출한 뒤 상하 양원 앞에서 연설했다.


"인간이 달에 착륙한 뒤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는 계획이 성공한다면, 다른 어떠한 우주 계획도 인류에게 이보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는 또한 장기적인 우주 탐사 계획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며, 이를 위해 온갖 어려움과 막대한 비용을 감수할 것입니다."

케네디는 이날 소련을 상대로 한 우주 개발 경쟁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소련은 1957년 10월 4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 궤도에 쏘아 올려 미국에 충격을 주었다. 미국이 우주 경쟁에서 소련에 뒤졌음이 확인되었을 뿐 아니라 '과학 최강'이라는 자부심에도 금이 간 것이다.


미국은 반격을 서둘렀다. 1958년 7월 29일 항공우주국(NASA)을 창설했다. 우주 관련 기술의 개발에 그치지 않고 과학기술 전반에 걸쳐 연구·개발 투자를 늘렸다. 대학은 물론 중고교 교과 과정도 개혁해 수학·과학 교육을 강화했다. 그렇게 쌓아올린 기초 위에서 소련의 우주기술을 뛰어넘기 위한 '아폴로 계획'이 진행되었다.


케네디는 1962년 9월 12일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라이스대학에서 유명한 연설을 했다. "우리는 달에 가기로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달에 가고 다른 일도 하기로 선택한 것은 그것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목표는 우리의 에너지와 능력을 최대한 조직하고 평가하게 해줄 것입니다."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고요의 바다'에 착륙한 탐사선 '이글'호에서 내렸다.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발을 디디는 순간이었다. 암스트롱은 "한 사람의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의 위대한 도약(That's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이라고 말했다. 아폴로는 미국의 과학기술을 상징하는 낱말이 되었다.


미국은 아폴로 11호 이후 다섯 번(12호, 14호, 15호, 16호, 17호) 더 탐사선을 달에 착륙시켰다. 달에 내린 대원은 모두 열두 명이었다. 1972년 12월 14일, 아폴로 17호가 달을 떠난 뒤 미국은 더 이상 달에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달을 마지막으로 밟은 사람은 아폴로 17호의 선장 유진 서넌이다. 그는 2017년 1월 16일 여든두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아폴로 계획에는 희생도 따랐다. 1967년 1월 27일 아폴로 1호 발사 훈련 중에 발생한 화재로 대원 세 명이 죽었다. 1970년 4월 13일에는 달을 향해 순항하던 아폴로 13호의 산소 탱크가 폭발했다. 구조는 불가능했다. 대원들은 달을 선회한 다음 착륙선의 추진력을 이용해 궤도를 바꾸는 데 성공함으로써 4월 17일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다.


아폴로 계획은 달과 우주를 바라보는 인류의 시각을 바꿨다. 그곳은 더 이상 환상과 낭만의 공간이 아니다. 인간은 과학의 눈으로 우주를 바라보며 탐험하고 개발해야 할 공간으로 받아들였다. 아폴로 계획을 진행하는 동안 다양한 신소재와 전자통신 등에 필요한 원천 기술이 개발돼 인류의 삶을 바꾸었다. 정수기와 전자레인지 같은 제품도 우주 개발의 부산물이다.


허진석 시인·한국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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