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방송인 최불암 씨(왼쪽부터)와 부인 김민자 씨, 박영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 투표 첫날인 10일 오전 서울역에 마련된 남영동 사전투표소를 찾아 투표를 마친 후 투표함에 용지를 넣고 있다. /김현민 기자 kimhyun81@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역대급 장면’을 연출한 상황을 꼽으라면 2010년 서울시장 선거를 빼놓을 수 없다. 이변에 이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선거였다. 영화나 드라마의 시나리오로 손색이 없을 장면을 연출했다.
반전의 시작은 여론조사였다. 2010년 6·2 지방선거의 최대 관심 지역인 서울은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의 일방 독주가 될 것처럼 보였다.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를 여유 있게 넘어서는 우위를 보였기 때문이다.
민주당 한명숙 후보 측에서는 “바닥 민심은 다르다”면서 선거일 반전이 있을 것이라 주장했지만 여의도 정가에서는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론조사는 ‘수치의 과학’이라는 이미지를 토대로 민심을 투영하는 잣대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 오류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은 할 수 있지만 명확하게 입증하기는 어려웠던 상황이다. 첫 번째 충격은 선거 당일 방송3사 공동 예측 조사 결과였다. 6월2일 오후 6시 방송사들의 예측 결과는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 47.4%, 민주당 한명숙 후보 47.2%로 초박빙 승부였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10일 서울역에 마련된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비닐장갑을 끼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한나라당은 비상이 걸렸다. 당시 선거 흐름을 고려할 때 정치의 심장부, 서울을 내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오세훈 후보와 한명숙 후보 양측 모두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당선과 낙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의 초박빙 승부라는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개표가 진행되자 다시 충격파가 이어졌다. 한명숙 후보가 오세훈 후보를 앞서는 상황에서 개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의도 정가 대다수의 예상을 깨고 한명숙 후보가 승자로 등극하게 될까. 개표 상황은 말 그대로 피 말리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진짜 반전은 선거일 당일이 아닌 다음날 새벽 4시에 벌어졌다. 줄곧 앞서던 한명숙 후보와 뒤쫓던 오세훈 후보의 운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명숙 후보가 앞선 것을 확인하며 잠자리에 들었던 사람들은 다음날 아침 깜짝 놀랄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오세훈 후보의 당선 확정 소식이 ‘긴급속보’로 뜬 시간은 선거 다음날인 6월3일 오전 8시26분이다. 선거는 전날 오후 6시에 끝났는데 당선자는 다음날 아침에야 확정됐다는 얘기다. 최종 결과는 오세훈 후보 47.43%, 한명숙 후보 46.83%의 득표율로 집계됐다. 0.6%의 초박빙 승부로 끝이 난 셈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는 “사실상 패배했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오늘의 승리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심장한 당선소감문을 내놓았다. 오세훈 후보 쪽과 한명숙 후보 쪽은 그날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그렇다면 당시 서울 민심은 어땠을까. 여론조사처럼 한나라당이 유리한 상황이었을까.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초상집과 다름없었다. 서울 25개 구청장 선거 중 민주당이 21명의 구청장을 배출했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10일 서울역에 마련된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오세훈 후보의 당선 확정 속보가 뜬 직후 당시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6·2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서울시장 선거 승리에 대한 기쁨을 만끽할 겨를도 없이 지도부 공백 사태에 직면한 셈이다.
21대 총선에서는 어떤 지역이 진땀 승부를 연출할까. 서울시장 선거와 비교할 때 지역구 선거 유권자 규모가 적은 관계로 다음날 새벽까지 개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개표 상황이 늦어질 경우 어떤 장면이 연출될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특히 박빙 지역구의 경우 투표함을 열 때마다 후보의 희비가 엇갈리는 진땀 승부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운명이 바뀌는 그 순간, 누군가는 다시 한번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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