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유가 10달러 폭락에 정유사 관세 2개월 '찔끔 유예'

원유 무관세·할당 관세 인하 등
업계 요구사항은 검토도 안해
"전략비축유라도 사달라" 호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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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박소연 기자, 황윤주 기자]유가가 18년 만에 배럴당 10달러대로 추락하면서 정유업계가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정부가 정유업체들의 관세 납부기한을 2개월 늘려주기로 했다. 하지만 업계는 관세 유예만으로는 역부족이라며 정부의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31일 기획재정부와 관세청, 정유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관세 납기 연장을 신청한 대형 정유업체에 대해 지난 27일 납기 유예를 2개월간 해주기로 했다. 관세법 제10조에 따르면 천재지변이 발생할 경우 법에 따라 세관장이 1년 이내로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SK에너지( SK이노베이션 ), GS칼텍스, 에쓰오일( S-Oil ), 현대오일뱅크 정유4사는 1조원가량의 관세를 내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석유 수요 급감과 유가 하락 등에 따라 지난주 관세청과 관련 사항을 협의했고 관세청이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관세청 관계자도 "2개월 납기 연장 결론을 지난 27일 내렸다"며 "추가 연장은 코로나19의 추이를 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정부는 정유업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수입 원유 무관세 및 석유 수입 부과금 인하 등의 한시 적용, 할당 관세 인하 등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세수를 관리하는 기재부와 관련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산업부가 아직 관계 부처 협의를 정식으로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원유를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원유 수입 관세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유가 하락에 따른 정유업계의 경영난은 할당 관세 인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금은 저유가 상황에 따른 정유업체의 경영상 어려움이 문제라고 판단된다"며 "관세법 제7조에 명시된 할당 관세 적용 요건인 수입 물가 안정, 수급 여건 개선 등엔 해당하지 않아 법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는 만약 세제 개편을 하기 어렵다면 전략비축유(SPR)만이라도 사달라고 호소한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 유예보다 실질적으로 정부가 비축유라도 사준다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정부는 SPR 확보에 관해 원론적 답변만 내놓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1980년대부터 SPR를 계속 사들여왔다"며 "최근 유가 상황이 계속 변하고 있는 만큼 추후 SPR를 매입할 때 이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유업계는 ▲정제마진 하락 ▲휘발유와 경유 수요 급감 ▲석유제품 판매량 감소와 해상유 수유 축소에 따른 공장 가동률 하락 등에 시달리고 있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3월 넷째주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1.1달러를 기록했다. 지난주에 이어 2주째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보통 배럴당 4달러가 손익분기점이라 현재로선 팔수록 적자만 커지는 상황이다. 유가가 폭락하면 가격 영향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요 급감 현상이 발생, 정유사들로서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수십년간 정유업계에 있으면서 글로벌 석유제품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은 처음 경험했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코로나19 초기 항공기 결항과 항공편 감축으로 항공유 수요가 줄면서 국내 잉여 항공유를 급하게 역내에 덤핑 처리하면서 버텨왔다. 하지만 휘발유와 경유 수요도 급감하며 정유업계 자력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아람코의 자회사인 에쓰오일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검토할 지경이다.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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