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 타자기] 두꺼비의 집념이 묻는다, 시대와 싸우고 있느냐고

청년들, 1980년대에 맞서다

[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김근태는 "우리 민주청년은 민주, 인권의 승리를 위한 지금까지의 반독재 투쟁 경험과 운동의 성과를 계승하면서 운동 이론을 체계화하고, 운동 주체를 조직화해야 한다는 역사적 요구에 좇아 민주화운동(전국)청년연합 결성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1983년 9월 30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있는 가톨릭 수도원 상지회관에서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하 민청련)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이 호기로운 선언 이후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그는 체포돼 고통스러운 고문을 견뎌야 했다. 김근태가 말한 민청련 창립 취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그 시대 청년의 외침을 가혹하게 뿌리치고 몇 년도 지나지 않아 급기야 고문의 이유로 삼았던 시대.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아 왔다. 우리 사회가 거쳐온 민주화의 고통이 알알이 박힌 그 이야기들을 '청년들, 1980년대에 맞서다'는 담고 있다.


1987년 민청련 부의장이었던 권형택, 1988년 민청련 의장을 역임한 김성환, 민청련 정책실에서 활동하며 '민주화의 길' 편집에 참여한 임경석이 정리한 민청련의 역사 '청년들, 1980년대에 맞서다'는 그저 한 시대를 돌아보는 후일담이 아니다. 1987년 6월 항쟁의 중심에 서 있었던 민청련의 활동은 독재의 암흑을 뚫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민주공화국으로 진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이 책은 집필됐다.

'청년들, 1980년대에 맞서다'는 1983년 창립 이후부터 1988년까지 민청련의 활동을 기록했다. 여기 담긴 1980년대 민청련이 맞닥뜨린 시대는 지금의 잣대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독재자가 국민의 눈을 가리고 입을 막고 힘과 폭력으로 나라를 통치하고 군림했던 시대라고 간명하게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시대의 상처가 녹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983년 창립부터 김근태 고문 사건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탄압, 6월항쟁, 이후 청년 대중조직으로 전환하기까지 그동안 이어진 민청련의 활동을 이 책은 고스란히 담았다.


민청련의 역사는 시대에 저항해 민주주의를 외친 청년들의 투쟁과 고난이 담긴 기록이다. 단지 정권 퇴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기틀을 확고하게 세우고 사회 진보의 길까지 연 6월항쟁의 중심에 민청련이 있었다. 6월의 열매를 맺기까지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민청련이 1985년 5월을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정권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는 민청련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민청련 전체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저자들이 쓴 당시 상황이다.


아니나다를까, 모진 탄압은 그 자체로 민청련의 역사가 됐다. "고문자들이 칠성판이라고 부르는 고문대에 담요를 깔고 눕히고서는 몸을 다섯 군데 묶었다. 발목, 무릎, 허벅지와 배, 가슴을 완전히 동여맸다. 신체에 고문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이 책에는 참혹한 고문의 현장도 기록돼 있다.

그럼에도 당시 청년들이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민청련 집행부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빗대 설화 속 독사와 두꺼비로 설명했다. 두꺼비는 독사에게 잡아먹히지만 두꺼비를 먹은 독사도 두꺼비의 독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잡아먹힌 두꺼비는 독사의 몸을 자양분으로 품고 있는 알까지 부화시킨다. 이는 민청련 정신의 상징이 됐다. 그리고 이 정신은 당시 묻힐 수도 있었던 사건들을 사회 문제화하고 이로써 정권의 반민주성과 폭력성을 드러내는 활동의 근거가 됐다. 언젠가 내 안의 독이 부조리한 세상을 거꾸러뜨릴 수 있다는 믿음의 역사까지 만든 것이다.


이는 회자되는 몇몇 영웅이 아니라 회비를 걷고 선전물을 운반하고 가두에서 시위한 평범한 청년들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잡아먹힐지언정 결국 독사를 죽이고 새끼까지 낳은 두꺼비의 집념은 지금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시대에 맞서고 있느냐고. 20년도 훌쩍 지나 그 시대 청년들이 기성세대가 된 지금,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각자의 고난에 맞서고 있는 이 시대 청년들은 어떻게 답할까.

(청년들, 1980년대에 맞서다/권형택, 김성환, 임경석 지음/푸른역사)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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