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대마젤란성운/고주희

온 방향이 허물어져 캄캄한 날

냉장육 가공 트럭 눈보라 속을 지난다

절단 난 하늘에선 잿빛 폭발음

낮의 소용돌이는 알 수 없어

밤에는 손깍지투성이니

바퀴는 구르고 또 굴러 무중력일까


노래는 새로울 것 없고 심장은 너무 멀구나

기능을 멈춘 냉장고 모터 밖으로

이름도 없이 추락하는 무수한 냉기들

고작 그런 것들이 한데 뭉쳐

앞바람과 뒷바람 사이에 낀 갈매기처럼

사력을 다해 제자리일 때

무참히도 아름다워

빛을 숨기며 한곳을 맴도는 사제 폭탄

차오른 숨결로 팽창하는 날개와 가스통 사이

받으나 마나 한 꽃다발을 들고

끝내 피가 돌지 않는 발끝으로 턴,


주먹을 쥐었다 펴면 전류가 흐른다

우리가 견딘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면

반대편 자정에 뜬 별들

어디를 건드려도 폭발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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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생뚱맞겠지만 이 시를 읽다가 문득 김연자가 생각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모르파티'를 부르던 김연자 말이다. 김연자의 인생 역정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알 것이다. 그런 김연자가, 이젠 늙어 버린 김연자가 화려한 무대의상을 입고 신나게 그러나 힘에 부친 듯 빙빙 돌면서 '아모르파티'를 부르는데, 울컥 눈물이 났다. "그 추억들 눈이 부시면서도 슬펐던 행복이여." 아모르파티(Amor Fati·운명애)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말이다. "노래는 새로울 것 없고" 삶은 '사력을 다해도 늘 제자리'다. "무참"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무참히도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견딘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면", 정녕 "사랑이라면" 말이다. 아모르파티!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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