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만의 '귀향'…사할린 강제동원 희생자 14위 봉환

행안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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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힘 없이 죽은 사람 어디 있으며,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으랴!' 1943년 초여름, 경북 영천의 어느 농가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논에 물을 대러 간 남편은 땅거미가 지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트럭에 실려 어디로 가는 것을 봤다는 얘기만 들려왔다. 당시 32세이던 남편은 한 살 아래인 아내와 6세 아들, 아내 뱃속의 딸을 남겨뒀다. 아내는 94세에 세상을 떠났고, 남편은 76년이 지나 한 줌의 흙이 돼 고국 땅을 밟았다.


일제 말기인 1938~1945년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됐다가 돌아오지 못한 한인 유해 14위가 6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유해들은 '국립망향의 동산'에 봉환됐고, 이튿날인 7일 오후 2시 정식 추도식을 치른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정부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유해 71위를 봉환했다. 이번이 일곱 번째 봉환으로 전체 봉환 유해는 85위로 늘게 된다.


유해들은 사할린 현지 10곳의 공동묘지에서 수습됐다. 유해의 주인들은 대일항쟁기에 강제로 끌려가 탄광, 토목공사, 공장 등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다. 고국 땅을 그리다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 고(故) 이석동(1915~1987년)씨의 유해를 봉환한 아들 희권(77)씨는 "1980년대 초 우연히 아버지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따뜻한 고국 땅에 모셔 평생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린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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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고(故) 정용만(1911~1986년)씨의 유해를 봉환한 손자 용달(51)씨는 "1943년 초여름, 논에 물 대러 나갔다가 징용에 끌려간 남편과 생이별을 한 94세의 할머니는 6살 사내아이와 뱃속의 딸을 홀로 키우며 한 많은 삶을 사셨다"며 "이미 선산에 할아버지께서 영면하실 산소까지 조성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사할린 지역의 한인 희생자 유해봉환 사업의 안정적인 추진을 위해 러시아 정부와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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