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윤자민 기자] #1. 퇴근 후 집 거실에서 가족들과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A(40)씨는 지난 25일 오후 9시 39분께 자신의 방으로 뛰어갔다.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려서다. A씨는 02-2081-****라는 번호를 확인하고 스팸 전화일 것으로 생각한 A씨는 기분이 언짢았지만 ‘통화’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로 시작해 연령대, 지지정당, 지지하는 사람을 묻는 멘트가 흘러 나왔다.
A씨는 “최근 새 밤에 내년 총선을 겨냥하는 듯한 ARS 여론조사 전화를 받은 게 두 번째다”며 “하다못해 오후 6~7시에 실시하는 것도 아니고 편안한 밤을 보내고 있는 시민들에 오후 10시가 다 돼서 여론조사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2. B(34)씨는 지난 25일 퇴근 후 오랜만에 친한 선배들과 맥주 한 잔 기울이던 중 오후 9시 39분께 지역번호 02로 시작하는 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확인했다. 직업상 전화를 꼭 받아야 되는 B씨는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에서는 “여론조사기관 **이다. 살고 있는 지역이…”라는 녹음된 자동안내 음성에 답하면서 선배들과 대화를 하지 못해 즐거운 술자리가 눈치보는 자리로 바뀌었다.
내년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가 20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ARS 여론조사가 극성이다.
총선 전 각 정당 또는 출마 예정자들이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하거나 선거 대비 전략을 세우기 위한 의도로 분석되지만 문제는 시간대다.
26일 광주광역시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공직선거법’에는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는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는 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는 ▲정당이 그 대표자 등 당직자를 선출하기 위해 실시하는 여론조사 ▲후보자(후보자가 되려는 사람 포함)의 성명이나 정당(창당준비위원회를 포함한다)의 명칭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정책·공약 개발을 위한 여론조사 ▲국회의원 및 지방의회의원이 의정활동과 관련한 여론조사 ▲정치, 선거 등 분야에서 순수한 학술·연구 목적인 여론조사 ▲단체 등이 의사결정을 위해 그 구성원만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여론조사를 제외한 여론조사다.
때문에 지지 정당, 지지하는 자 등을 묻는 여론조사는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로 볼 수 있어 오전 7시 1초부터 오후 9시59분59초까지 실시할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이 직장인의 근무시간보다 비교적 응답률이 높은 저녁·야간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진행한다는 게 지역 정치권 인사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퇴근 후 모임을 갖거나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시민들은 짜증이 앞선다.
통상 퇴근시간대인 오후 6시 이후에 저녁식사나 술자리를 갖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이 전화 한통, 여러 가지 질문으로 수 분을 할애하면서 나름의 즐거운 분위기가 곧장 망가지기 일쑤여서다.
시민 박모(39)씨는 “본격적인 선거철도 아니고 벌써부터 오후 9시가 넘은 시간에 여론조사 전화에 시달려야 하느냐”며 “법에 규정된 여론조사 가능 시간을 앞당기던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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