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초대석]"금리 인하로 늘어난 유동성, 자산 시장 유입 땐 버블 우려"

<최재영 국제금융센터 원장 인터뷰>


미국 제외한 주요국 정책금리 대부분 마이너스…인하 효과 제한적

기업들 투자·소비 주저하는 이유는 미·중 무역분쟁 불확실성 때문

확장적 재정정책이 경기부양 대안

한국, 재정 지출 여력 높아 긍정적

일본과 같은 경기부진 장기화 주의

고령화·투자부진 구조적 대응 안 한 일본정책 반면교사 삼아야


내년 미국 경제 관전 포인트는 대선 앞둔 트럼프의 무역분쟁 포지셔닝

대중 관세 인상으로 수입물가 오르면 소비 위축 이어져 경제둔화

부분타협 혹은 휴전 가능성 있어

최재영 국제금융센터 원장./윤동주 기자 doso7@

최재영 국제금융센터 원장./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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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아시아경제 강희종 경제부장, 정리=심나영 기자] 1999년 4월, 제2의 외환 위기를 막겠다는 목표로 당시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이 새로 만든 기관이 있다.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국제금융센터가 그곳이다. 전 세계 금융 상황을 실시간 감시ㆍ분석해 위기 시 조기 경보 신호를 울리는 게 주요 임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세계성장률 전망치를 3% 이하인 2.9%로 낮출 만큼 세계경제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고, 정부는 재정을 풀어 경제 침체를 막기에 급급하다.


23일 아시아경제와 만난 최재영 국제금융센터 원장은 금리 인하 정책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 원장은 "미국을 제외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정책금리가 대부분 마이너스 상태이지만 불안 심리를 잠재우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주요국들의 완화적 통화 정책으로 늘어난 시중 유동성이 자산시장에 유입되면 버블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시각에 대해선 "일본 정부가 고령화, 소비 위축, 부동산 버블, 투자 부진 같은 구조적 문제에는 대응을 제대로 못 해 효과 없이 정부 부채만 누적시킨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면서 "수출 중심인 우리와 내수 중심인 일본은 상황이 다르지만 일본처럼 경기 부진이 장기화할 가능성에는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최재영 국제금융센터 원장./윤동주 기자 doso7@

최재영 국제금융센터 원장./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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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올해 들어 두 차례 금리를 인하했다.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에 나서는 것은 실물경제를 진작하고 경제 심리를 회복시키는 효과 때문이다. 현재 미국을 제외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정책금리가 대부분 마이너스다. 실물 경기를 부양할 정도의 금리 인하 여력이 과거보다 작다. 금리를 인하해도 불안 심리를 잠재우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주요국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용한 양적완화, 장기저리대출 정책을 다시 내놓고 있지만 이미 한계를 경험했다. 기업들이 투자와 소비에 주저하는 건 금리가 높기 때문이 아니다. 미ㆍ중 무역 분쟁,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이다.


-금리 인하 효과는 제한적이고 부작용만 생긴다는 말인가.

▲늘어난 시중 유동성이 자산시장에 유입되면 버블이 생길 수 있다. 특히 투자 위험이 큰 유로화 투기등급 회사채 금리가 마이너스에 거래되는 건 이례적이다. 재정 적자가 큰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0.8%대 수준이다. 이것이 통화 정책 부작용의 예다. 이런 현상은 채권 금리가 계속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한 지속될 것이다. 문제는 기준금리가 실효하한금리(금리 인하가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는 마지노선)를 밑돌 때다. 이럴 때 실효하한을 기준으로 삼아 채권을 산 사람들이 단기적으로 채권 매도 물량을 쏟아내면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ㆍ주가나 채권 금리 등 금융 상품 가격의 일시적 급락)'가 벌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경기를 부양할 다른 방안은 무엇인가.

▲앞으로는 실물경제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확장적 재정 정책에 초점이 모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정 지출 여력이 높은 편이라 경기 대응 능력이 상당하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재정 정책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형태로 민간의 소비와 투자에 직접 기여한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최근 사설에서 재정 정책에 인색한 독일과 우리나라를 비교했다. 한국 정부의 재정 확장을 이용한 경기 부양 조치가 귀감이 될 수 있다는 게 요지였다.


최재영 국제금융센터 원장./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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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다.

▲세계경제는 복합적 불확실성에 직면해 무기력해졌다. 이로 인해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계속 커지고 있다.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은 미ㆍ중 무역 분쟁, 글로벌 경기 둔화, 각국의 정책 대응 세 가지다. 먼저 즉각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ㆍ중 무역 분쟁이다. 지난 7~8월 국제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린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 침체다, 아니다에 대한 시각차도 불안감을 일으켰다. 각국의 정책 여건이 다른 것 역시 불확실성을 높였다. 일례로 미국은 아직 금리 운용에 여유가 있다. 달러 채권에 대한 수요도 많다. 그러나 유럽은 통화 정책 운용의 폭이 좁고 정부 부채 비율이 높다. 우리나라는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요인 모두에 큰 영향을 받는다.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 변수도 가세하면서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식 장기 불황을 닮아간다는 평가도 있다.

▲일본 경제는 내수 비중이 높아 위축된 내수 경기를 회복시키기가 쉽지 않다. 반면 우리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아 세계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지금은 글로벌 경기 둔화로 주요국들과 함께 부진하지만 세계 경기에 연동돼 경기가 개선될 여지가 있다. 우리 경제의 지난해 수출 비중(국내총생산(GDP) 대비)은 42.8%다. 일본은 지난해에도 17.5% 수준이었다. 다만 일본의 경우와 같이 경기 부진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는 있다. 일본 정부는 과거 경기 불황 시 고령화, 소비 위축, 부동산 버블, 투자 부진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는 대응하지 않았다. 단기적인 문제에만 대응해 효과 없이 정부 부채만 누적시켰다. 그 결과 지금도 경제 정책이 제약을 받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중국이 성장하면서 한국도 함께 성장하는 동조화 현상이 약화됐다.

▲중국 경제는 두 가지 이유로 한국 경제와 밀접하다. 첫째는 무역 의존도와 같은 실물 경제상의 높은 연계성이다. 둘째는 한국과 중국을 동일 경제권으로 보는 해외의 인식이다. 투자은행(IB)들은 향후 중국 수출이 마이너스 증가세로 전환되고 투자ㆍ소비 등 내수도 둔화돼 경기 부양책을 써도 6%대 성장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신용 리스크, 외환시장 불안, 부동산 시장 거품을 포함한 내재 리스크에 홍콩 사태까지 가세하면 내년 성장률이 5%대 중반으로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우리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중국이 못 만드는, 비교우위가 확실한 중간재를 개발해야 한다. 과거엔 우리가 중국에 중간품을 수출했는데 중국에서 자체 개발로 중간재를 만들면서 밸류 체인이 바뀌고 있다. 바로 여기에 대응할 방법이다. 또한 현재 추진 중인 신남방, 신북방 정책으로 수출시장 다변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미ㆍ중 무역 갈등이 심해지면서 베트남이 급부상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율을 부과하자 대체재인 베트남산 제품의 수출이 증가했기 때문인데, 우리에겐 기회다.


최재영 국제금융센터 원장./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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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세계경제 흐름의 가늠자인 미국 경제의 관전 포인트는.

▲내년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ㆍ중 무역 분쟁에서 어떤 포지션을 취할 것인가를 눈여겨봐야 한다. 대(對)중국 수입품 관세 인상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이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경제가 둔화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부분 타협' 혹은 '휴전'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반면 패권 경쟁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에 대한 강경한 자세를 더욱 고조시킬 수도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속도와 폭도 중요한 변수다. 금리 인하 속도가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면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금리 인하 폭이 예방적인 수준 이상이 될 경우엔 불황이 임박했다는 경제 심리가 확산되면서 경기 하강을 심화할 우려도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 파장은.

▲다수의 해외 IB는 높은 상호 무역 의존도와 국제사회의 비판 등을 고려할 때 일본의 수출 규제가 일부 품목의 수출을 다소 지체시키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규제 품목의 수출을 일부 승인하고 기업들도 재고를 확보했다. 우려와 달리 생산 차질은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HSBC나 피치는 향후 수출 규제의 향방이 매우 유동적이어서 한일 갈등이 불확실성을 증대시켜 기업 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의견도 내놨다. 한국 기업들이 조달처 다변화와 국산화에 속도를 내 장기적으로 대일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가 된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시티은행과 BNP도 일본의 수출 규제가 장기화될 경우 대(對)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위기 상황 극복의 동력이 될 우리나라의 장점은 무엇인가.

▲경제를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구조적 관점에서 경제의 기초 체질이다. 둘째는 경제의 대내외적 여건이다. 기초 체질에 주안점을 두는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경상수지 흑자 기조와 단기 외채 비율 하락, 외환보유고를 높이 평가한다. 최근의 금융 불안 속에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신용등급 및 전망을 그대로 유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IB들과 해외 투자자들은 글로벌 경기 둔화와 미ㆍ중, 한ㆍ일 갈등 같은 단기적 부분에 초점을 맞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정부는 해외 투자자들의 우려를 덜기 위해 통화ㆍ재정 정책을 추진하고 대외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정책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정부가 해외 투자자들에게 확장적 재정을 포함한 정책 설명을 적극적으로 해 설득할 필요가 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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