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문득 돌아보니, 거기 내가/박정남

비가 오는 날인데

누가 손짓하는 것 같아

문득 돌아보니

거기 내가 서 있네요

돌이 되어 서 있네요

원래는 골동품 가게 안에 있었는데

나를 보고 엉겁결에 튀어나왔다네요

나를 놓치고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무슨, 하염없는 기다림처럼

화강암으로 깎은

처음부터 한 동자였던 것처럼


일찍이 집을 나와 집을 잃고

산속으로 들어 새집을 찾은 동자승처럼

엄마가 그리운 동자승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엄마는 채전에 들어

고소한 부추전을 구워 주었던 것처럼

나를 따라오고 있었네요

나이기도 한, 한 배고픈 동자승이

돌 속에 들어 비를 바라보고 있는 날이네요

오래 서러웠던 것처럼

한없이 젖어 보는 빗속에

조금만 더 슬퍼져도 흰 눈 속으로

아주 들고 싶은 흰 꽃들의 나라

어찌 큰 서러움이 없었겠어요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내 가슴속의

흰 눈이 펑 펑 내려 붓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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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바쁩니다. 참 바빠서 일 년 전이 아니 십 년 전이 어제만 같고 어제가 아까만 같습니다. 그래서 잊어버리곤 합니다. 십 년 전의 저를, 작년 여름의 저를, 바로 어제 아침의 저를 말입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펑펑 울었던 것도 처음 당신의 손을 잡았던 저녁의 따스함도 이젠 겨우겨우 생각납니다. 왜 그 여름날 골목길에 혼자 앉아 울었는지는 정말이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득 돌아보니, 거기 내가", 기억나지 않는 내가 저를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참 미안합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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