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또 다른 세상서도 착취당하는 라짜로

영화 '행복한 라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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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한 마리가 숲속을 전전한다. 늙고 병들어서 무리에서 쫓겨났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마을로 내려가 가축을 해친다. 화가 난 사람들은 늑대를 죽이려 한다. 그러나 행방을 찾지 못하고 다시 불안해한다. 한 성자가 나타나 늑대에게 휴전을 청하자고 제안한다. 그 또한 늑대를 만나지 못한다. 강행군에 지쳐 눈길 위에 쓰러진다. 늑대가 성자를 발견한다. 잡아먹으려고 달려들다가 처음 맡는 냄새에 멈춰선다. 선한 사람의 기운이다.


영화 '행복한 라짜로'에서 내레이션으로 전하는 이야기다. 이탈리아 인비올레타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에 흘러나온다. 겉보기에는 소박하고 평화로운 농촌이다. 부드러운 초원은 끝이 없고, 햇빛은 한결같이 따뜻하다. 사람들은 맏물로 딴 담뱃잎을 나르느라 여념이 없다. 새끼로 엮어 벽에 널어 말린다. 멀리서 빨간 트럭이 구름 먼지를 일으키며 온다. 양복을 차려입은 관리인 니콜라. 아이들은 그 앞에 일렬로 늘어서 딱밤을 맞는다. 대가는 사탕이다. "이건 네 거다, 딱! 여기 있다. 녀석아, 딱! 안젤리카, 딱! 스테파니아,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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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가적인 전원의 풍경.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궁핍한 현실이 드러난다. 밤이 되자 무의탁 합숙소나 다름없는 건물에서 주민 쉰네 명이 불편하게 잠을 청한다. 전등이 한 개뿐이라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술과 연애가 유일한 낙. 이마저도 마음껏 누리기 어렵다. 뼈 빠지게 일하지만, 빚만 쌓인다. 담뱃잎, 렌즈콩, 병아리콩 등을 수확하지만 울타리용 철망과 휘발유, 안초비를 사면 남는 돈이 없다. 젊은 연인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시 생활을 꿈꾼다. 그러나 알폰시나 데 루나 후작 부인(니콜레타 브라스키)의 허락을 받지 못하면 마을을 나갈 수 없다. 봉건 영주에게 예속된 농노와 같은 삶이다.


이들은 소작제가 이미 오래전 폐지된 사실을 모른다. 1977년에 홍수가 나면서 외부와의 교류가 단절됐다. 후작 부인은 이 틈을 이용해 주민들을 부려먹는다. 그녀의 아들 탄크레디(루카 치코바니)는 주민들이 진실을 알아차릴까 걱정한다. 후작 부인은 의미심장한 말로 안심시킨다. "저들은 개돼지나 마찬가지야. 풀어주면 자신들이 비참한 노예임을 깨닫게 되지. 당장은 힘드니까 모르는 거야." "그럴듯하네요." "저 애를 봐. 난 농부들을 착취하고 그들은 저 애를 착취해. 끊임없는 연쇄반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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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가리키는 아이는 이 영화의 주인공 라짜로(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다. 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힘든 농사일을 해낸다. 잔심부름도 그의 몫이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들어 옮기고 수다 떠는 아낙들에게 커피를 배달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울상을 짓는 법이 없다. 늘 온화한 얼굴로 모든 부탁을 들어준다. 신약성서에서 언급하는 두 명의 나사로를 반영한 배역이다. 한 명은 병이 들어 죽지만 나흘 뒤 예수의 기도로 무덤에서 부활한다. 다른 한 명은 부잣집 대문에서 버리는 음식으로 연명하다 숨을 거두는데, 사후에 천국 향연이 베풀어지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 그에게 인색하게 군 부자는 지옥에 거하는 비참한 처지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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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짜로는 탄크레디를 찾다가 언덕에서 떨어져 기절한다. 그가 정신을 잃은 사이 주민들은 진실을 깨닫고 도시로 향한다. 그러나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는다. 감자 과자로 끼니를 때울 만큼 가난하다. 전철이 다니고 공사가 한창인 길가에서 사기를 치며 먹고산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라짜로를 다시 홀대하고 등쳐먹는다. 후작 부인이 예견한 그대로다. 고마움은 짧고 수난은 길다. 마을 사람들과 늑대의 휴전을 중재하려던 성자도 비슷한 처지였다. 늑대는 문학에서 공포와 탐욕을 상징한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도 존재한다. 테베레강에 버려진 로물루스는 늑대 젖을 먹고 기른 힘으로 이탈리아를 건국했다. 그 후손들은 탐욕과 야심이 넘치는 세계에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라짜로와 성자는 그 단단한 사슬을 풀 수 있을까. 그들은 통탄의 눈물로 묻고 있다. 우리가 먼저 끊을 수는 없느냐고.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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