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연초부터 점검했다는데…대응TF는 사흘전에 구성

점점커지는 부실대응 논란

산업부, 관계기관회의 열고 피해 분석

"상응조치 있지만 공개 어렵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자료사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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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일본이 예고한 대로 4일부터 반도체 등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 수출 제한 조치에 들어갔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선제적으로 대응해왔다"고 항변하고 있으나 여전히 뒷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실제 발동된 이날 오후에서야 서울 종로에 위치한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주재하는 관계기관 회의를 연다. 이번 회의에는 한국무역보험공사와 한국무역협회를 포함해 반도체ㆍ디스플레이협회와 코트라, 전략물자관리원 등의 관계자가 참석한다. 이 자리에선 일본 정부의 반도체 등 제조에 필요한 핵심 품목 3개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발동에 따른 실질적 피해 규모를 분석하는 한편 대응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당초 4~5일 페루에서 열리는 태평양동맹(PA) 관계 장관회의 출장을 계획했던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를 취소하고 관계기관 협의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정부의 뒷북 대응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연초부터 이 문제를 꾸준히 점검해 왔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은 정부의 무대응ㆍ무대책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 정부의 대응TF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제한을 공식발표한 1일에나 구성했다. 올 3월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강제징용 관련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 자산 압류가 실제 행해지면 한국에 대한 보복 조처를 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구체적 현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정부는 이번 일본의 소재 수출규제 강화를 명백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으로 보고 WTO 제소 방침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WTO 제소 이외에 마땅한 대응책은 없는 상황이다. WTO 제소 자체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따르고 있다. 홍 부총리는 "일본이 경제보복을 철회하지 않으면 (WTO제소 외에도) 여러가지 가능한 대응조치를 정부가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의 경제보복에 상응조치를 준비하고 있으나 현재로선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레지스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 수소) 등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제조 과정에 필요한 소재의 수출 규제에 이어 '화이트 리스트' 국가제외로 확산될 모양새다. 일본 정부가 지정한 이 리스트는 무기 개발 등에 사용될 수 있는 물자나 기술, 소프트웨어 등을 통칭하는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 관련 절차를 간소화해 주는 국가 목록이다. 일본 정부는 오는 24일까지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해 여기서 한국을 배제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략물자 중 미사일과 원자력, 화학무기 등에 사용되는 것을 뺀 화이트리스트 대상이 되는 민수품은 1100개 내외다. 항공기용 알루미늄과 탄소섬유, 로봇, 컴퓨터, 태양전지, 데이터케이블 등인데 국제통일상품분류체계에 따라 품목을 분류하는 HS코드와 달리 명확하지 않아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최종 제외될 경우 파장이 불가피하다.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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