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타래실/이담하

잘 감기고 잘 풀린 적이 없어서

잘 감기고 잘 풀리려고 삼천 원을 주고 샀다


팔삭둥이에게 명줄 길라고 걸어 주었던 타래실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천천히 잘 풀릴 때

엄마는 나를 당신 쪽으로 감고

나는 엄마를 향해 천천히 풀었던 실의 시간

그때 나만 하던 아이 손에 걸어

풀리는 시간과 감기는 시간을 실패에 감아야겠다

감을 일도 풀어야 할 일도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풀리는 궤적을 따라가

끝을 보는 맨손과 실패의 관계

실이 한 올씩 풀릴 때마다 실패는 부풀고

그동안의 실패가 둥글어지는 집 안을 뒤져 보면

아직도 몇 개의 실패가 있다면

실패에 감기지 않아 실패를 모르는

실패를 기다리는 실이 집 안 어디에 있을 것 같다


[오후 한 詩]타래실/이담하 원본보기 아이콘

■이 시에서 '실패'는 '실을 감아 두는 작은 도구'라는 뜻과 더불어 '일을 잘못하여 바란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이라는 의미를 아우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시인은, "실이 한 올씩 풀릴 때마다 실패는 부풀고"에서 "실"을 '일'로 바꾸어 보면 금방 눈치챌 수 있듯, 성공과 실패가 실은 하나라는 사실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결국 성공하느냐 혹은 실패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패의 실을 얼마나 잘 감고 잘 푸느냐 곧 실패(失敗)를 얼마나 잘 다스리느냐가 관건이라는 뜻. 그러니 "실패를 기다리는 실"이란 닳고 닳은 세상의 이법을 애써 전수하고자 적은 바가 아니라 삶에 대한 결연한 선언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채상우 시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