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행복/심재휘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보람찬 하루라고 말했지


창밖은 봄볕이 묽도록 맑고

그 속으로 피어오르는 3월처럼 흔들리며

가물거리며 멀어지는 스무 살 뒷모습에 대고

아니다 아니다 후회했지

매일이 보람차다면

힘겨워 살 수 있나


행복도 무거워질 때 있으니


맹물 마시듯

의미 없는 날도 있어야지

잘 살려고 애쓰지 않는 날도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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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러운 시에 좀 객쩍은 사담을 얹자면 이렇다. 예전에 전날 술을 아주 많이 마셔서 종일토록 자고 있었는데, 그런 나를 보고는 어머니가 “이놈은 고생하지 말고 편하게 놀고먹고 살라고 아침저녁으로 빌고 빌었더니 정말 주구장창 놀고만 사네”라고 한탄조로 푸념하시는 거였다. 좀 죄송스러웠다. 좀 죄송스러워서 계속 자는 척을 했다. 그런데 그러다 괜히 큭큭 웃음이 났다. 틈만 나면 내게 부지런히 살아라, 열심히 살아라, 허투루 살지 마라 귀에 인이 박이도록 말씀하셨는데 실은 놀고먹고 살길 바라셨다니 말이다. 오늘은 맹물 한 잔 곁에 두고 말간 하늘이나 한참 바라보련다. 채상우 시인




허진석 기자 huhba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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