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청론] 5%룰 개정전 국민연금 독립성ㆍ전문성 강화 선행돼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자유롭게 다니는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소설 속 투명인간이나 해리 포터의 투명 망토가 친근한 이유다. 몸을 숨겨야 하는 이는 은밀한 움직임이 필요한 자이거나 약자인 경우가 많다. 국민연금은 자본시장의 '우물 속 고래'인 큰 존재이지만 금융 당국에 투명 망토를 달라고 보채고 있다.


자본시장법엔 '5% 룰'이 있다.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상장 회사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자는 지분이 1% 이상 바뀔 때마다 지분 보유 목적과 변동 사항을 5일 안에 공시해야 한다. 이사 후보 추천, 경영진의 해임이나 배당 요구 등이 이에 속한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계기로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려니 공시 의무가 국민연금에 상당한 걸림돌이었던 것 같다. 공시할 때마다 투자 전략이 노출되고 추격 매수를 부추긴다는 우려가 일어서다.

금융연구원이 발표한 방안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됐다. '지배(control) 변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으로 경영 참여를 한정하자고 한다. 임원 후보 추천이나 해임 청구, 대외적 입장 표명은 주주 제안이나 위임장 대결 같은 과격한 방식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로서 행사하는 의결권은 경영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방안대로라면 경영 참여가 아닌 것이 된다.


이의를 제기한다. 첫째,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고(故) 조양호 회장 이사 선임 반대, 한진칼에 대한 주주 제안같이 과도한 경영 개입을 한 전력이 있다.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구조가 정부로부터 독립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결과다. 상장사의 최대주주 지위를 갖거나 투자 회사의 의결권을 직접 행사하는 사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한국의 국민연금이 유일하다. 국민연금은 건전한 주주 활동을 하기 위해 정부나 특정 이익단체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둘째, 자본시장에서의 국민연금은 일반적인 투자자와 위상이 다르다. 국민 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과 영향력이 크다. 국민연금의 투자 목적이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이 분명하다면 5% 룰 때문에 투자 전략이 노출될 가능성에 대해 염려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투명한 공시와 주주권 행사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셋째, 세계 기준(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아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 운영에 관한 일본과 유럽연합(EU), 미국의 사례가 있지만 특례를 인정하진 않는다. 특례를 인정한다 해도 지분 5% 이상에선 적용하지 않는다. 이들 나라의 연기금은 의결권을 외부에 위탁하거나 정치적 외압이 미치지 못하도록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한다.


연기금에 대한 공시 완화라는 답을 정해놓고 억지로 짜 맞춰선 안 된다. 상장사에 대한 공시 규제는 세계 기준에 맞게 강화하면서 연기금의 공시 규제는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도록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누구나 마법의 투명 망토를 원한다. 책임이 따르는 요구다. 5% 룰에 대한 특례는 독립성과 전문성이라는 국민연금의 선결 과제가 해결된 뒤에 논해야 할 사항이다.


정우용 상장사협의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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