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원 "이사보수 총액승인제 개선해야"

15세기 탐험가 콜럼버스는 달걀 세우기 논쟁이 붙자 달걀 밑동을 깨 세워 보였다. 제국주의 세계관을 비판하는 고어로도 쓰이지만, 관행을 과감히 깨는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시행하는 사례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15세기 탐험가 콜럼버스는 달걀 세우기 논쟁이 붙자 달걀 밑동을 깨 세워 보였다. 제국주의 세계관을 비판하는 고어로도 쓰이지만, 관행을 과감히 깨는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시행하는 사례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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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코스피 상장 증권사인 A사는 2019년 사업연도에 이사 보수 한도 39억원을 제시했지만, 지난 10년간 실지급률은 18.46%, 전체 보수액 대비 변동급여 비율은 60.6%였다. 변동급여 비중이 큰데도 실지급률의 5배가 넘는 이사 보수 상한선을 설정했다.


코스피 사장 식품업체 B사는 2019년 사업연도에 이사 보수 한도 68억원을 설정했다. 지난 10년간 실지급률은 42.4%였지만 대표이사 급여 중 변동급여는 11.4%에 불과했다. B사가 이사에 지급한 보수는 매출액, 영업이익 등 성과지표와 전혀 연동되지 않았다. 실제 지급 보수의 2배나 되는 한도를 설정해놓고 보수 체계 및 지급 관행에서 성과와의 연동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기업지배구조원)는 '2019년 주주총회 리뷰-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을 중심으로'란 보고서를 내고 이사보수 총액승인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9일 밝혔다.


상장사들이 이사에 지급한 보수에 대한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것은 물론 주주들이 관련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도 현행 제도상 제한적이라는 의견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3월 업무계획 발표를 통해 전년 이사 지급 보수 실수령액을 공시토록 확대키로 한 상황에서 나온 분석이다.



자료=한국기업지배구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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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지배구조원은 올해 주총 기간에 이사 보수 안건 299건 중 81건에 반대 투표를 권고했다고 밝혔다. 반대 권고 비율이 전년 2.1%에서 27.1%로 올랐는데, 자체 가이드라인 개정판을 적용한 덕분이라고 했다. 기존엔 이사 보수 한도 안에 대해 '이사회의 규모, 경영성과 등'만 고려했지만 개정안에선 '회사 및 이사회의 규모, 경영 성과, 보수 지급의 성과연동성, 실지급율 등'도 감안했다.


자료=한국기업지배구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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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상법 제388조상 이사 보수는 정관에 액수를 정하지 않은 이상 반드시 주주총회 결의에 의해 승인받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선 관행적으로 이사 보수의 지급 총액에 대해서만 주주들이 승인하는 총액승인제도로 운영되고 있고, 개별 이사 보수 지급액은 이사회 또는 권한을 위임받은 위원회에서 정하고 있다.



자료=한국기업지배구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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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지배구조원은 이사 보수 실수령액이 아니라 보수 한도를 승인받는 것만으로는 주주들이 실질적인 견제·감독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현재 주주들은 주총 개최 시점에 이사들의 직전 사업연도 보수 실수령액을 알 수 없어 주총 안건으로 올라온 보수 한도 적절성을 판단키 어렵다. 따라서 회사에서 보수 총액을 승인받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한도를 실제 지급액보다 과하게 높게 정해 승인 받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어 주주가 이사 보수 실수령액을 합리적으로 추정하는 것조차 힘들다.



자료=한국기업지배구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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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지배구조원은 "이사 보수 한도를 총액으로 승인받는 관행이라 실질적인 주주권을 확립하기 위해선 보수한도와 실제 지급 보수액 사이의 괴리를 줄이거나, 주주가치 또는 성과와 연동된 보수 체계를 기업들이 갖추게 해 성과 보상 차원에서 지급된 보수의 한도와 실제 지급액 사이의 괴리가 갖는 타당성을 소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선진국처럼 이사 보수에 대한 주주권고 투표(Say-on-Pay)를 도입하거나, 영국 등과 같이 보수보고서 승인 제도를 참고해 이사의 보수에 대한 주주의 실질적인 권한 확대를 꾀할 필요가 있다"며 "이사의 보수와 그 세부 내역, 성과 측정 방식 등 이사 보수 체계에 대한 구체적 내역을 면밀히 공시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손영채 금융위 공정시장과장은 지난 3월7일 업무계획 발표 때 "주총 전에 기업이 제시하는 참고서류에 총액한도 외에 이사가 보수로 얼마를 받았는지 투자자가 알아야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하는데 그동안 공시 의무화가 안 돼서 회사가 공개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며 "주총 전년에 얼마나 이사에게 보수가 지급됐는지 총액을 의무 공시토록 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료=금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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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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