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더 힘들어진 청약시장…"미계약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

미계약 174가구 쏟아진 홍제역 해링턴플레이스, 무순위분양 경쟁률 33대1
자금 조달 실패한 무주택자들은 '분양권+최대 5년 기회' 잃어
결국 대출 제한에 자유로운 현금부자들에게 기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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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서울 서대문구 홍제 3구역을 재개발한 '홍제역해링턴플레이스' 전용면적 84㎡ 청약에 당첨된 양모씨는 오랜 고민 끝에 계약을 포기했다. 운 좋게 로열동, 로열층을 받았지만 자금 마련 계획이 엉켜버렸기 때문이다. 근처에 거주 중인 부모님의 구축 아파트를 팔아 가구를 합치려 했으나 아파트 가격 하락과 매수세 실종으로 처분이 어려워진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가격을 낮춰 내놓으면 그만큼 커지는 대출액 탓에 원리금 상환액과 이자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양씨는 새 아파트 분양권은 물론 향후 5년간의 청약 기회도 함께 내려놓았다.


정부가 서민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넓히겠다며 추진한 청약제도 개편이 대출 규제와 맞물려 오히려 무주택자들을 분양시장 밖으로 내몰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세를 멈추고 약세에 접어들면서 보유 자금이 부족한 당첨자들이 자산 가치 하락 가능성에 공포감을 느껴 청약 포기에 나서는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실거주 수요가 많았던 강북 지역마저 진입 장벽이 높아져 현금 부자들만이 접근 가능한 시장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부동산 정보 서비스업체 직방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분양 단지의 3.3㎡당 평균 분양가(공급면적 기준)는 2795만원을 기록했다. 특히 한강 이남을 제외한 강북 지역은 광진구 고가 분양 등의 여파로 3.3㎡당 평균 분양가가 2810만원에 달한다. 실수요자가 가장 선호하는 전용면적 84㎡의 평균 분양 가격은 9억5000만원 수준으로, 대출 규제 기준인 고가 아파트 '9억원'의 벽을 넘어섰다.


이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중도금 대출 보증을 9억원 이하로 제한한 전(前) 정부는 물론 문재인 정부가 서울 전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40%로 옥죈 당시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다. 당시만 해도 서울 강북에 9억원을 넘긴 84㎡ 청약 물량은 없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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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올해 들어 분양가 상승으로 강북에서도 9억원대 청약 물량이 속속 등장하면서 무주택자의 새 집 마련을 돕겠다고 만든 규제가 되레 서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설사 분양가가 9억원 이하인 일부 비선호 동이나 저층 물량에 당첨됐더라도 'LTV 40%' 규제에 묶여 최소 5억원 상당의 현금을 갖고 있지 않다면 계약서를 쓰기 어렵다. 바뀐 청약제도가 주택 하락장과 맞물리면서 서민보다는 자금력이 높은 현금 부자들의 리그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서울 내에서 보유 자금이 부족한 서민들은 사실상 청약을 통해 내 집 마련을 실현하기 어려워졌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단 진입만 하면 차익이 기대되는 상황이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청약 단지에 따라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ㆍ조달 가능한 모든 자금을 끌어다 쓴다는 뜻의 은어)' 자금이 훼손될 수 있는 상황으로 분위기가 전환된 영향도 컸다.

전체 일반분양의 41%에 달하는 174가구가 미계약으로 쏟아진 홍제역해링턴플레이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투기 수요가 없는 지역인 데다 실거주 요건이 좋은 초역세권 단지이지만 높은 분양가(3.3㎡당 2469만원), 부동산시장 하락기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에 따른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무순위 분양(사후 접수)에 5800여명이 몰리며 평균 33대 1, 최고(48㎡) 134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분양가가 9억원을 넘어 중도금 대출이 어려운 114㎡(4가구) 미계약분에도 129명이 신청해 31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현금 부자들의 '줍줍(미계약ㆍ미분양 물량을 주워가듯 매수한다는 뜻의 은어)'이 시작된 것이다.


'대한민국 청약지도'의 저자 정지영(아임해피)씨는 "2016년 말부터 관련 수치를 추적해왔는데 이 정도의 미계약분은 최대 규모"라고 평가했다. 그는 "상담을 진행해보면 계약 포기자들은 사실상 향후 5년간은 새 아파트시장에 들어오지 않겠다,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단념한 이른바 '내포자(내 집 마련 포기자)'들"이라면서 "집이 전 재산인 실수요자일수록 집값 하락을 두려워하고, 지금의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또 "그다음은 실수요자가 아닌 투자자들의 몫이며, 똘똘한 한 채를 지나 똘똘한 청약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약 전문가인 박지민(월용이)씨는 "2억~3억원 정도의 자금을 들고 있는 무주택자 입장에서 강남은 물론이고 강북에서조차 청약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면서 "입지보다 가격에 맞춰보려던 실수요자들도 대안을 찾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지난해 말 공급규칙 개정으로 1순위시장에 무주택자만 들어올 수 있게 됐다"면서 "여신을 굉장히 까다롭게 운영하고 있고, 거래시장이 위축돼 기존 집은 팔기 어렵고, 강북에서도 평균 분양가 9억원 이상의 아파트가 출현하면서 미계약이 속출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 전문가는 "제도적으로 유주택자를 거르면서 청약 경쟁률이 낮아지고 거품이 급격히 꺼져 실수요자들이 하락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게 된 것"이라면서 "무주택 서민들에 한해 대출 규제를 일부 풀지 않는다면, 결국 여유 있는 현금 부자들의 줍줍으로 소진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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