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몰랐어요?" "뭐를요?" "가정이 있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알면서 뭘 어디까지 가려고 한 거예요?" "바람 한 번 피워보세요. 그게 생각대로 되나." 영화 '미성년'에서 영주(염정아)와 미희(김소진)가 나누는 대화다. 미희는 영주의 남편 대원(김윤석)과 바람이 나서 아이까지 낳는다. 영주는 병원을 찾아간다. 자초지종을 묻자 당돌한 답이 돌아온다. "갈 데가 여기밖에 없어서 왔어요." "한 대 때리고 가요."
미성년은 두 가정이 불륜 때문에 격랑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김윤석 감독은 사건보다 각 배역들의 감정에 주안점을 둔다. 특히 대원의 딸 주리(김혜준)와 미희의 딸 윤아(박세진)의 변화에 주목한다. 고민과 성장을 돋보이게 해 미성년과 성년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김 감독은 "우리는 가끔 나이의 구분이 마치 인격의 완성과 미완성의 구분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주제의식이 분명해지려면 도입에서 제시하는 불륜과 이에 따른 인물들의 변화를 세밀하게 그려야 한다. 그런데 미성년은 이런 시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 초반 설정한 배역의 성격이나 행위를 그대로 유지해 가리킬 뿐이다. 대원은 영주의 핀잔을 듣기 싫어 가출한다. 변산반도의 바닷가 풍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생각에 잠긴다. 미희는 아이를 낳은 뒤에도 대원을 그리워한다. 어긋난 결혼생활 때문에 온갖 고생을 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철부지다. 그나마 영주의 삶은 조금 변한다. 머리치장과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는다. 그러나 자신을 위로하거나 보듬는데 여전히 서투르다.
성장이 멈춘 어른들은 주리와 윤아의 변화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두 여고생은 결정적으로 미희가 낳은 못난이(태명)를 통해 화해하고 성장하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미숙아의 얼굴을 보고 예쁘다며 방긋거린다. 그런데 미희를 포함한 어른들이 못난이를 보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혹여 모성애나 동정심이 유발되면 주리와 윤아의 차별성이 희석될 것을 우려해 빼버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두 그룹을 동일선상에 두지 않은 비교는 편법에 불과하다. 주제의식에 대한 고민이나 고찰을 기대할 수 없게 한다.
미성년의 어른들은 영주 정도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비현실적이다. 미희는 어린 나이에 윤아를 낳아 혼자 키우다시피 했다. 자기 혼자의 힘으로 집안을 일으키고 나름 큰 식당을 운영하는데, 여자로서 험하게 살면서 생겼을 관록이나 두터움이 전혀 배어있지 않다. 대원의 아이를 임신하고도 아무 걱정 없이 무지갯빛 꿈만 꾼다. 대원은 이보다 더하다. 미희의 배가 눈에 띄게 불러 왔는데도 태평하다. 소파에 기대 맥주를 마시며 어떤 수입차를 구매할지 고민한다. 주리에게 안마까지 받으며. "아빠, 인기 많아?" "인기 많지."
김 감독은 이런 배역을 통해 특정 세대를 가리키는 위험한 시도를 한다. 대원은 집을 나와 찾아간 변산반도에서 낯선 할머니에게 돈을 뜯긴다. 어린 폭주족들에게 구타도 당한다. 김 감독은 "윗세대와 아래세대 사이에 끼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386세대의 현실"이라고 했다. "영주가 미희를 찾아갔듯이 용기를 내서 솔직한 말을 건네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대원은 조강지처와 2년 넘게 각방을 쓰다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특별한 배역이다. 김 감독이 직관에만 의존해 규정한 사회 현상을 떠올리게 하기에는 적당하다고 볼 수 없다.
무리한 상징성의 부여는 결말에서도 나타난다. 주리와 윤아는 못난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대원과 미희가 사랑을 속삭였던 유원지로 향한다. 주리는 엄마에게 받은 딸기우유와 초코우유를 꺼내어 개봉한다. 그 안에 못난이의 유골을 털어 넣어 윤아와 함께 마신다. 못난이는 물론 아빠와 엄마의 행위를 기억하겠다는 일종의 의식이다. 김 감독은 "못난이가 예수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죄의식을 드러내는 은유로서 소중한 희생이 필요했다"고 했다. 누구보다 못난이를 애틋하게 바라봤을 미희를 한 번이라도 조명했다면 이런 결말이 가능했을까. 주리와 윤아의 차별성이 흐려지기에 미성년이라는 제목부터 달 수 없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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