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폐지반대국민연합 소속 관계자들이 낙태죄 폐지 반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반대편에서 낙태죄폐지공동행동 관계자들이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펼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원본보기 아이콘[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낙태를 죄로 규정하는 형법에 대해 우리 사회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간 이분법적 구도를 전제로 찬반 의견을 개진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같은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낙태를 여성의 '재생산권' 측면에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표출되고 있다. 재생산권이란 말 그대로 자신의 재생산 여부를 주체적으로 통제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 신체적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출산과 성에 대한 양성 평등권, 자녀 양육을 위한 공적 지원 요청권 등이 이 권리에 포함된다.
낙태를 형법으로 금지한다는 것은 시민의 재생산권, 즉 임신과 출산 전 영역을 국가가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개념을 담는 것이다. 반면 재생산권이 그 당사자인 개인, 여성에게 있다는 것이 낙태죄 폐지론자의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국가는 인구학적 관점에서 여성의 몸을 통제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산아제한 정책이다.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 아래 1981년 86만7000명이던 출생아 수는 1983년 76만9000명으로 떨어졌다. 과연 당시 남녀가 피임을 잘해서였을까. 국가는 인구수를 줄여야 할 때 공공연하게 낙태를 처벌하지 않았다.
김광재 도헌공법연구소 변호사는 "낙태 문제의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는 바로 여성 자신"이라며 "출산과 양육은 여성 인생 전체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낙태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선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팀장도 "여성이 건강하고 존엄하게 재생산과 관련된 결정을 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며 "여성의 재생산권이 충분히 보장된다면 자연스럽게 저출산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이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낸 국가인권위원회의 논리도 맥을 같이한다. "국가가 임신을 강제할 수 없는 것처럼, 임신중단(낙태) 역시 여성 스스로 판단해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헌법재판소의 선고는 '태아의 생명권 보장' 차원에서 낙태죄를 바라봤던 2012년 이후, 여성의 재생산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 수용됐는지 가늠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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