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사이 슬그머니 철회" … '개학 연기' 유치원 수 줄어

정부, 모든 유치원 전수조사 이어 시정명령까지 강경대응 고수

한유총 공세에도 "학부모·아이 볼모로 인질극" 여론악화 부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이 무기한 개학 연기 투쟁을 시작한 4일 서울의 한 유치원 정문이 굳게 닫혀 있다. 정부는 개학을 무단 연기한 유치원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거쳐 형사고발 조치하는 등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이 무기한 개학 연기 투쟁을 시작한 4일 서울의 한 유치원 정문이 굳게 닫혀 있다. 정부는 개학을 무단 연기한 유치원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거쳐 형사고발 조치하는 등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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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김형민 기자] 4일 문을 열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유치원 중 상당수가 밤 사이 이 계획을 철회하면서 일단 '유치원 대란' 우려는 면한 모습이다. 정부가 모든 사립유치원에 대한 전수조사와 시정명령 등 강경 대응을 예고한데다 부정적 여론까지 확산되자 부담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규모 '개학 연기'를 추진해 정부를 압박하려던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입지도 다소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문 닫는다, 다시 연다…학부모만 '발 동동'= 서울 노원구 W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는 맞벌이 엄마 A씨는 지난 주말 북부교육지원청에 긴급돌봄을 신청했다. W유치원이 5일에도 개학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4일 오전 W유치원은 다시 '정상 개학'을 알려왔다. A씨는 한숨 놨지만 유치원의 제멋대로식 결정에 단단히 화가 났다.


교육부와 각 시ㆍ도교육청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전날(3일) 밤 11시 기준, 서울 26곳을 비롯해 전국 사립유치원 365곳이 개학을 연기할 것으로 나타났다. 개학 여부를 명확히 답하지 않은 유치원은 121곳이었다. 3일 정오까지만 해도 전국에 개학 연기를 결정한 사립유치원은 381곳, 무응답은 233곳이었다. 수치가 다소 감소한 것이다. 그러나 4일 오전 10시까지 집계해 보니 이 수치는 더 감소했다. 집계 자료가 공개된 서울시는 26곳에서 20곳으로, 경기는 77곳에서 71곳, 경남은 87곳에서 84곳으로 줄었다.


다만 교육당국에 개학 연기 여부를 밝히지 않은 유치원 121곳 중 일부가 개학 연기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어 실제 개학을 연기한 유치원은 최대 486곳에 달할 수 있다. 이는 전체 사립유치원(3875곳)의 14.3%에 해당하는 규모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오전 경기 용인교육지원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다행히 개학 연기에 참여하는 유치원 숫자가 조금씩 줄고 자체 돌봄을 하겠다는 유치원이 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일부 사립유치원의 개학 연기는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재차 강조했다.


각 시도교육청은 개원 연기에 대비해 국ㆍ공립유치원과 어린이집 등을 총동원한 '긴급 돌봄체제'를 가동했으나 이 또한 학부모들의 걱정을 덜어주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공덕동에 거주하는 한 학부모(42)는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근처 마포 지역에서 유일하게 개학을 연기하는데 학기 초부터 수업은 커녕 돌봄조차 엉망일 게 뻔하지 않느냐"며 "대안이 없어 계속 한유총 소속 유치원에 보낼 수 밖에 없는 심정은 정말 답답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학부모(서울 오금동ㆍ38)는 "이번 사태는 사립유치원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벌인 '인질극'이다"며 "정부가 예고한 대로 강경하게, 제대로 엄벌하라"고 요구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이 무기한 개학 연기 투쟁을 시작한 4일 서울의 한 유치원 정문에서 교육청에서 나온 임경진 장학사가 시정명령서를 붙이고 있다. 정부는 개학을 무단 연기한 유치원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거쳐 형사고발 조치하는 등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이 무기한 개학 연기 투쟁을 시작한 4일 서울의 한 유치원 정문에서 교육청에서 나온 임경진 장학사가 시정명령서를 붙이고 있다. 정부는 개학을 무단 연기한 유치원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거쳐 형사고발 조치하는 등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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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볼모 잡은 강대강 대치는 계속될 듯= 교육당국과 한유총의 충돌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비리유치원 명단'이 공개되면서 촉발됐다. 정부가 이에 대응해 '유치원3법(사립학교법ㆍ유아교육법ㆍ학교급식법 개정안)' 등으로 유치원 공공성과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려 하자 한유총을 중심으로 뭉친 사립유치원들이 집단행동으로 맞서 왔다.


아울러 이달 1일부터 원아 200명 이상 사립유치원에 국가관리회계시스템(에듀파인) 사용을 의무화하는 '사학기관 재무ㆍ회계규칙 일부 개정안'이 시행됐다. 사립유치원이 에듀파인을 쓰게 되면 유치원 원장이 원비를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현장체험 학습비 등 학부모 부담 경비를 실제 비용보다 많이 받고 차익을 챙기는 등의 회계 비리가 불가능해진다.


줄곧 에듀파인 도입에 반대하던 한유총은 돌연 지난달 28일 시스템 도입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육부와의 대화를 요구하고 개학 무기한 연기를 선언했다. 정부는 한유총이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며 타협 불가를 고수하고 있는 상태다.


한편 연례행사처럼 툭하면 '집단 휴원' 등으로 학부모를 불안하게 하는 한유총에 대한 인식은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전날 "국민이 인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며 "유아 교육을 자신들의 사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한유총에 대해 엄중히 대처하지 않으면 교육당국이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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