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다랭이마을/이승규

 
 밭 위에 밭
 햇볕 위에 햇볕
 지붕 위에 마당이

 와르르 무너지지 않게
 밭이 밭을 꽉
 바람이 바람 꽉
 애 업은 큰누나가 꽉
 
 바다가 하늘로 쏟아지지 않게
 눈물이 눈물로 부서지지 않게 바람 위에 마늘
 마늘 위에 파도
 파도 위에 서슬 퍼런
 꼬부랑 할머니가 꾸욱 꽉


■시인의 친절한 주석이 아니어도 남해의 "다랭이마을"은 관광 명소가 된 지 오래다. "밭 위에 밭"이, "햇볕 위에 햇볕"이, "지붕 위에 마당"이 있는 마을. 물론 놀러 온 사람들에게는 그 위태로움이 더할 수 없는 절경이겠고 즐거움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바다가 하늘로 쏟아지지 않게" "눈물이 눈물로 부서지지 않게" "바람 위에 마늘"을 심고 "마늘 위에 파도"를 얹은 채 살아왔고 또한 살아가고 있을 "애 업은 큰누나"와 "꼬부랑 할머니"를 말이다. 자신의 생이 "와르르 무너지지 않게" 그저 "꾸욱 꽉" 이를 사려 물고 버텨 왔을 그 "서슬 퍼런" 사람들. 풍경은 그런 쓰라린 삶이 거세된 관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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