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달 25일 공약사항인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조정을 전제로 인권경찰을 구현할 방안을 마련할 것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 강화를 지시하면서 각 정부부처의 인권위 권고 수용 상황을 점검하고 수용률을 제고하도록 했다. 이는 검찰개혁의 과제로 수사기관의 권한을 큰 틀로 변경하면서도 기본적인 인권실현이 관철되는 국정운영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그렇다면 인권경찰을 구현할 방안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을까? 얼마 전 경찰은 7월부터 경찰에 고소ㆍ고발을 당한 사람도 고소ㆍ고발장을 열람 및 복사할 수 있게 하여 경찰 수사의 공정성을 향상하기 위한 규칙 제정안을 마련했다.
이는 피고소인 등의 방어권보장에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수사를 받는 국민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수사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에게 유리한 말은 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이는 검찰과 경찰 모두에게 적용되는 과제이기도 하다. 특히 수사기관이 물어보는 법률쟁점에 대해 법률전문가인 변호인과 언제든지 상의할 수 있는 권리, 즉 변호인 조력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핵심이다.
수사과정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변호인의 조력은 무엇일까? 억울해하는 피의자를 추궁하는 수사기관과 법조문과 법률용어를 난사하며 말싸움을 하는 변호인의 모습은 미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변호인도 수사기관과 당당하게 맞서 싸우고 있는가?헌법에 규정된 변호인 조력권을 구체화하여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를 신문할 때 변호인이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형사소송법에 명문화된 것은 참여정부시절이다. 그러나 이후 대통령령(검사의 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지휘 및 사법경찰관리의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법무부령(검찰사건사무규칙), 경찰청훈령(범죄수사규칙) 등에서 하나 같이 변호인은 수사기관의 승인 없이는 신문에 개입할 수 없으며, 피의자를 대신하여 답변하거나 특정한 답변을 유도하는 경우에는 피의자신문 중이라도 변호인의 참여가 제한되도록 만들었다.
이와 같이 상위법을 무력화시킨 하위법령으로 인해 간절히 법률조언을 받고 싶어 하는 피의자를 옆에 두고 변호인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관행에 대해 지난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변호인의 참여를 단지 피의자 신문과정에서 인권침해를 감시하기 위해 입회하거나 경찰관의 승인 하에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 정도로만 한정하는 것은 변호인의 상담 및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에 소홀하다"고 지적하면서 경찰청에 범죄수사규칙을 즉각 개정하라고 권고했지만 경찰청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이를 거부했다.
최근에는 고영태와 최순실과의 대질신문과정에서 검사가 고씨 변호인에게 고씨와 1m 이상 떨어진 뒤쪽에 앉도록 강압적으로 명령해서 변호인이 피의자에 대한 변호인의 조력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며 이를 취소하는 준항고를 제기했다.
이는 "수사기관이 피의자신문을 하면서 정당한 사유가 없는데도 변호인에 대하여 피의자로부터 떨어진 곳으로 옮겨 앉으라고 지시를 한 다음 이러한 지시에 따르지 않았음을 이유로 변호인의 참여권을 제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한 대법원 결정에 반할 뿐만 아니라,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수사를 받는 피의자의 심리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제대로 된 방어권이 보장될 수 없게 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접수받아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검찰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피의자가 최근 6년간 총 79명에 달한다. 매년 10명 이상이 자살한 셈이다. 경찰의 인권보호수준이 검찰보다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국민의 인식인 점에서 피의자인권개선이라는 관점은 검찰과 경찰의 공통된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지시한 인권경찰 구현과 인권위 위상강화를 위해 경찰청은 이전 정부에서 인권위가 변호인 참여권을 부당하게 제한한 것으로 지적한 범죄수사규칙을 지금이라도 개정하여야 하며, 정부 역시 동일한 내용을 지닌 대통령령 등을 즉각 개정하여 수사과정에서 피의자의 인권이 개선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조정보다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이전 정부의 인권경시태도와의 결별이기 때문이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 ·前서울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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