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아시아경제DB)
2013년 인기를 구가하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칠봉이의 고백에 순천에서 온 해태는 "삶의 사이즈가 다르다"고 감탄한다. 그러면서 지역에서는 늙어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야 하며 무르고 그런 것은 없다고 한다. 20여 년 전만 해도 이혼은 서울 사람들이나 하는 것인 양 생경하게 여긴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혼은 더 이상 낯설게만 바라보는 남의 일이 아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94학번들이 어느덧 가장 이혼을 많이 한다는 40대가 되는 동안 '사이즈'도 달라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4년 우리나라에선 약 6만5000건의 이혼이 있었지만 2015년엔 10만9200건이었고 지난해에는 11월까지만 이미 9만8100 쌍이 이혼 도장을 찍었다. 한 해 이혼하는 이들이 약 5만 커플, 10만 명이 늘어난 셈이다. 그만큼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겠다는 맹서는 가벼워졌다. 20년 전만 해도 결혼은 무르고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무르는 것 정도는 별 흠도 아니게 됐다.이혼에 대한 인식 변화에 담긴 함의는 결혼이 지닌 가치의 무게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가족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의미한다. 결혼은 남편과 아내가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서서 아이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사회의 긴밀한 구조의 일부분을 형성하는 중요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혼이나 재혼은 물론 결혼을 둘러싼 요사이의 다양한 형태들, 이를테면 '졸혼', '만혼', '비혼' 등 느슨한 결혼에 대한 여러 개념들도 단지 개인의 선택이라는 문제를 벗어난다. 물론 당사자에겐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겠지만, 그 의미는 결국 사회의 구성에 대한 변화한 가치관을 담고 있는 것이다.
2017년 '이혼고백서'가 다시 쓰여야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이 1934년 '삼천리'에 게재한 이혼고백서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고발장이었다. 나혜석은 "조선 남성의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라며 스스로 독립된 주체로 살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당시에는 급진적이었던 이 이혼고백서가 적용되는 이혼은 여전히 적지 않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조보다 결혼을 깰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진 요인들이 더 많다. 당장 통계청의 이혼통계만 봐도 성격차이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다음은 경제문제였다. 배우자의 부정은 그 다음인데 그 비중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이는 남성 중심적인 정조관념이 결혼과 가족을 지탱하는 바탕이 더 이상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 관점에서 결혼에 대한 고전인 버트란드 러셀의 '결혼과 도덕'이 최근 재출간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러셀은 이 책에서 개인의 내밀한 감정인 사랑이, 어떻게 결혼을 통해 사회의 필수적 요소로 기능하는지를 추적했다. 러셀의 혜안에 따르면 결혼과 가족 구성에 있어 정조가 중요하게 된 것은 원시부족에서 부계사회의 시작과 함께 한다. 자식이 자신의 핏줄인지 확인할 수 없게 된 남성이 여성의 정절을 중시하며 그것을 통해 여성을 종속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남녀 간의 사랑의 결합이어야 할 가족은 남성이 여성을 소유하는 형태로 변질됐다. 바로 나혜석이 이혼고백서에서 지적했던 바다.
러셀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너무나도 간명하다. 바로 사랑이다. 왜곡된 제도가 아닌 그 근원적인 감정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사랑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는 것은 삶을 확장시켜주며 자신의 가능성을 발현시키는 강력한 힘이라고 역설한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사랑의 결실이라고 여겼던 결혼은, 더 구체적으로 결혼제도는 어쩌면 지금껏 사랑을 억압하는 기제였을 수 있는 것이다.
러셀의 지적은 너무 당연하지만 종종 간과되고 있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일깨운다. 사랑이 없는 결혼은 의미가 없다는 것. 러셀은 개인의 내밀한 감정인 사랑이 결혼을 통해 사회의 필수적인 요소로 기능하게 된다고 봤고 이 사랑이 억압받는 결혼이라면 지속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러셀은 아이가 없는 부부가 이혼을 원하면 아내가 임신 중만 아니라면 바로 결혼의 무효가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회의 근간을 지탱하는 요소는 사랑이지 결혼제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랑과 행복한 결혼이라는 최근의 트렌드는 삶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는 개인의 노력인 동시에 안정된 사회를 위해 해결해야 할 보편적인 목표와도 부합하는 셈이다. 러셀은 주장했다. "남녀 간의 진지한 사랑은 인간의 모든 체험 가운데서 가장 풍요로운 것이 된다. 이런 사랑은 모든 위대하고 귀중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도덕을 필요로 하며, 더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희생은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희생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 사랑의 토대 자체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하여 2017년 이혼고백서가 다시 쓰여야 한다면 "한국 사람들의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는 자발적인 사랑을 요구합니다"라고 시작해야 할 것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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