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일이 줄어서 좋기는 한데 법이 무섭긴 무서운가 봐요."
소위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시행된 후 첫 명절을 지난 주말 맞았습니다. 이 법을 체감한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기자라는 타이틀을 명함에 새기고 있다는 이유로 친구들 모임에서 농담으로라도 "너 때문에 맘껏 못 먹겠다"라는 타박 아닌 타박을 받기도 했죠.
물론 자기가 먹은 만큼 돈을 내는 일이 억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기자'라는 명함으로 가지고, 그리고 미풍양속이라는 미명하에 명절이면 출입처에서 조그마한 선물을 감사하게, 한편으로는 미안하게 받기도 합니다. 담당 부서, 출입처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빈 박스를 처리할 때 다른 집 보다 조금 더 그 숫자가 많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설에는 확실히 선물 숫자가 줄었습니다. 절대수치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선물 숫자가 감소하면서 한편으로는 알고 지내던 분들께 불필요한 신세 질 일이 줄었으니 다행이라는 느낌과 더불어 아주 조금은 서운한 감정도 든 것이 사실입니다.
저희 아파트는 일요일에 재활용을 합니다. 이번에 박스를 들고 나가보니 청탁금지법을 실감하게 됩니다.
종전 명절 때면 과장해서 표현해 산더미처럼 쌓였던 종이박스 더미가 이번에는 평소 주말의 두 배도 되지 않았습니다.
저희 아파트 경비실 아저씨께서 "이번 명절은 경기가 어려운가, 법 때문인가 박스 정리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하십니다.
청탁금지법으로 인심이 박해졌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주고 받는 선물 속에 '정(情)'이 아니라 '흑심'이 끼는 경우가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는 서울 노원구의 전형적인 서민주거지역에 있습니다. 그래서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한국 부자들이 산다는 '서울 강남지역의 재활용 현장의 풍경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우문(愚問)입니다.
이런 생각이 든 건 수백 만 원대 굴비, 한우, 와인 등 초고가 선물세트가 품절사태를 맞았다는 언론보도를 접했기 때문입니다.
설을 계기로 청탁금지법에 대한 불만이 조금이라도 증폭된다면 '내가 못 받아서'는 절대 아닐 겁니다.
법의 목표가 상류층의 부정부패를 방지하자는 것인데, 혹시 서민들만 법 준수하느라 마음 고생하는 것 아닌 가 하는 일종의 피해의식, 상대적 박탈감이 크게 작용한 탓이 클 것입니다.
행복을 느끼는 데 중요한 것은 개인의 절대 소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득에 대비된 상대소득입니다.
청탁금지법도 마찬가지로 본인이 선물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라 이 법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공정하게 적용되고 있는 가가 법시행 성공의 잣대로 적용돼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조건은 아마도 각 사람의 지문만큼이나 다양할 겁니다. 하지만 불행의 공통조건은 형평성의 균열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 청탁금지법으로 한결 깨끗해지기를 바랍니다. .
박성호 기자 vicman12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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